자연음악을 부르는 의미

아랑(芽朗)

 

 

      만일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한다.

       

      나무를 바라보면서

      ‘이 나무는 봄이 왔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은 당신이 바라보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치식물의 꼬불거리는 잎사귀와

      검은 줄기가 되어야 하고,

       

      잎사귀들 사이 작은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 잎사귀들이 꺼내 보이는

      평화로움을 만질 수 있어야 한다.

 

 

 

- 어떤 것을 알려면 / 존 모피트(John Moffitt)

 

 

 

지금까지는 자연음악을 듣는 방법이나 어떤 음악이라는 것만을 설명해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자연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부르고 연주하는 것입니다.

치료라는 관점에서 보면 약이나 수술은 사실상 인간의 자연치유를 도울 뿐 그것 자체가 치료의 근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치료하려는 몸의 회복기능이나 나으려는 의지가 없다면 절대로 치료는 되지 않습니다. 자연 치유력 없이 치료가 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그건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주체는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능동성만이 어떤 목적에서든 핵심인 것입니다.

단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학습에 있어서 수동적으로 배우는 학생과 능동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의 성과는 얼마나 큽니까? 스스로 기도하지 않고도 성령을 만날 수 있습니까?
스스로 참선하지 않고도 ‘참나’ 를 만날 수 있습니까?
남이 쓴 책속의 진리라는 것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요즘 힐링과 평안, 깨우침과 수행을 테마로한 책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두번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위로도 되고 공감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고, 책에 나와있는 방법대로 그렇게 살면 행복하질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 몇 번은 해봅니다.
어떤 경우에는 변화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힘들어하고 화내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자연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다소 신기하고 낮선 음색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다른 음악들과는 다른 편안함과 어떤 분들께는 영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다소 치유의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은 귀에 익게되고 신선했던 느낌들과 치유되는 감각들과 편안한 감정들은 이내 당연한 듯 치부해 버립니다.

그런 패턴을 거치며 서서히 자연음악을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듣지도, 관심도 없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자연음악은 그 사람에게 분명히 치유를 해주거나 깨달음을 준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나 말입니다.

그렇지만 자연음악은 그 정도로 도움을 주고 끝낼 목적의 것이 아니였습니다.
더군다나 더욱 행복해지거나 치유될 좋은 기회의 상실이였기 때문에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제가 알고 느끼는 이 음악을 느끼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좋다고 이야기를 해도 선듯 와닿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나무나 풀이 부른 노래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음악이 있습니까?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런 음악 자체가 있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치료가 되는 사례가 있는 음악이 있습니까?

짧게는 유사 이래로 이런 음악이 세상에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있었다고 해도 좋아하는 얼마의 사람들끼리 즐기고 끝난 경우 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런 음악을 세상에서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런 좋은 기회인데 무엇이 문제이고 문제였던 걸까요?
음악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자신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기호의 문제였던 것일까요?
왜 처음에는 좋았다가 듣지 않게되고 잊어버리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연음악을 스스로 불러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연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이 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빗물이 폭포처럼 쏱아지는 폭우 속에서는 입만 벌리면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우는 금방 그치고 목마름도 이내 다시 찾아옵니다.
그러면 물이 고인 곳을 찾거나 땅을 파서 우물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연음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음악을 가까이 하고 좋아하게된 만큼 목마름을 해결해주듯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하늘을 향해서 입만 벌리고 있듯이 있다면 말입니다.

물을 먹어봤다면 스스로 물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듯이 우물을 파야합니다.
자기만의 그런 우물을 파야만 합니다.
스스로 음악을 부르고 연주를 해봐야만 합니다.

 

이 자연음악은 ‘가제오 메그르’ 라는 한 사람이 옮겨오고 연주해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할 법이 있습니까?

더군다나 가제오 메그르가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자연음악들에서 몇몇 곡을 옮겨온 것일 뿐입니다. 곧 이 세상에는 여전히 흘러넘치는 자연음악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모른다면 배우면 됩니다.
가제오 메그르는 항상 이 음악은 나무나 풀, 꽃들, 바람이나 물...
별들이 가르쳐주고 들려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듯 배우고 가르쳐 달라고 할 대상은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사람과 이야기하듯 이야기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부르라고 가르쳐주고, 악보를 눈앞에 펼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마음을 먹어도 여전히 식물들이란 멀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서 여러번 강조했던 것이 있습니다.
“자연과 대화하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는 것입니다.

‘식물에게 말걸기’ 그것은 정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자기자신의 인식영역의 확장과 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도인 동시에,
한 인간이 치유와 진리의 근원인 대자연으로 회귀하는 깨달음의 여정의 중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것을 흘려서 보셨다면,
이 설명서의 앞으로 되돌아 가셔서 다시 읽어보십시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연음악이 이 세상에 나타나게된 궁극적인 목적이 그 한가지에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연의 존재들이 자연음악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목적의 시작과 끝이 바로 그런 ‘말걸기’ 에 담겨있는 것이며 자연음악을 통해서 치유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식물에게 배우고 느끼면서 자기만의 자연음악을 부르고 연주해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자연음악을 올바로 듣고 또 자연음악이 당신에게 전해주려는 치유와 깨달음... 그리고 행복의 능동적인 창조의 시작인 것입니다.

제 말이 진실인지는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식물들과 함께 소리내어 음악을 부르거나 연주해본 다음에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연음악을 듣기만 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과 느낌들...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자연음악을 전곡하고 불러낸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학생이라면 왕따, 어른이라면 이혼이나 생활고... 병등으로 괴로운 처지의 사람들이였습니다.
심지어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어떤 충고도... 멘토도, 도움도 행복하게 해주지를 못했습니다. 신도 종교도 믿음도 저 먼 곳에 있을 뿐 그 무엇도 도움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통증도 마음의 괴로움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돈과 권력... 그리고 욕심으로 가득할 뿐, 그 어디에도 마음편이 안길 곳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숱한 배신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계속되는 불행들 속에서 절망할 뿐이였습니다.

하지만 자연음악을 만나고서 자연만은... 자신을 태어나게 했고 살아가게 하고 있는 자연만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연의 사랑을 이 자연음악을 통해서 느끼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대자연의 ‘사랑’ 이 자신에게 보내지고 있음을 느끼려고 했습니다.

 

먼저 작은 식물 하나부터... 꽃 한송이부터 시작했습니다.
말을 걸었고,
마음을 서로 느끼며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 되었고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처럼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럼으로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삶을 깨닫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연음악을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랑’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받고있는 사랑을 깨닫고자 노력했고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바로 이 대자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은 사랑없이는 성립될수도...그리고 우리 모두도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발을 디디고 있는 대지, 쉼 없이 들이마시는 공기...
빛나는 햇빛 그리고 푸른 나무들과 매일같이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들...
어떻게 이것이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돈을 주고 살수도 없고 빼앗지도 않았지만 주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듯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고 있다고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주어서 받는 사랑은 한쪽 사랑입니다.
하지만 자기자신이 사랑하겠다고 주는 사랑은 나머지 반쪽을 채워줍니다.
그렇게 양쪽의 사랑이 자신의 마음 안에 차오르게 되면 될수록 인간은 행복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이 부모라면 내가 사랑한 만큼 자식이 자신을 위해줄때 얻는 기쁨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대상이라면 사랑한 만큼 상대방이 자신에게 사랑을 해줄때 얻는 기쁨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이 있음을 느끼려고하고...
그리고 받고 있는 사랑을 깨닫고 깨달은 사랑만큼 주는 것...
그것을 주고받는 사이에 행복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연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라는 매개체 없이는 진정으로 자연음악을 느낄 수도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연의 사랑이 있음을 느끼려고 하며 자연음악을 듣고 부르고...
다시 다른 사람들과 자연에게 되돌려주려고 할때 자연음악은 비로서 이 자연에서, 자기자신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대자연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자연음악이 태어났고 여러분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항상 자연음악이 자연계의 존재들의 노래인 동시에 ‘사랑’ 의 노래라는것... 그것을 잊지말고 대자연의 사랑을 깨닫고 모두와 함께하시길 바라며, 더불어 구체적으로 조금더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연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 월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

 

 

 

* 가제오 메그르(風緖輪)의 자연음악 * Nature Music of Kazeo Megur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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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芽朗) * nature_music@daum.net * http://Lyr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