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제 남편이 미국 여행을 잠시 하고 와서,
그랜드 캐년 관광 도중 가이드로부터 들은 말이라고 하며
이런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옛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들소를 사냥하여 잡아먹으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들소에게 이런 말을 남기곤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잡아 먹는데 대해 전혀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중에 내가 죽으면 땅에 묻힐 것이고
그러면 내몸을 비료로 삼아 풀들이 자랄 것이고
그 풀들은 바로 네 자손들의 먹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 남편이 제대로 듣고 전해 준 말인지 어쩐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그 말은 어떤 울림을 제게 주었습니다.
우리집은 옆에 빈터가 있어 (일종의 행운이지요)
자연스럽게 그곳에 채소와 화초를 키우는 즐거움을 누리며 산답니다.
그런데 채소나 화초를 키우게 되면 솎아 주어야 하거나 김을 매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저는 참 마음에 갈등을 느끼곤 했답니다.
뽑혀서 버려지는 식물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고민 끝에 어떤 분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식물을 대한 다면 식물은 당신에게 섭섭한 마음을 품지 않을 거예요. 식물은 그것을 기꺼이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거예요."
저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식물들에게서 예수님의 사랑 (순종하는 마음으로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자신이 식물보다 하나도 잘난 것이 없음을 그때 느꼈습니다. 저는 식물들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시비분별 따지기 잘하고, 남보다 잘난 척 허식으로 가장하고, 위선을 밥먹듯하고, 누군가 나의 이익에 손상을 끼칠라치면 악착스럽게 반항하고 ........
참으로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후로 밥상 앞에 앉으면
마치 성만찬을 하듯 진지한 마음이 되어 감사를 올립니다.
'내게 자신의 몸을 내주어 음식으로 먹게 해준
뭇 생명들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들의 생명을 먹고 힘을 얻었으니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야하겠구나. 그들이 준 에너지를
참되게 써야되겠구나. '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에는 못미칠 때가 많고,
육체의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영적으로는 철부지에 불과한 제 자신을 압니다.
세실리아 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나무와 쥐똥나무 들에게 미안하시다는 그 맑은 마음,
그래서 정성껏 다기를 만드셨다는 그 마음,
아마도 뭇 식물들이 세실리아님의 그 마음에
깊은 위로와 평강을 보내주지 않을는지요.
따뜻한 허브차 한 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