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천태만상의 인간들에 대하여 내면의 느낌을따라 함께 더불어 고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보고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시작되어 불어난 지구
상의 인간들은 이제 아무리 먼거리에있는 곳에도 서로가 서로를 순식간에 알아볼
수있는 세상이 된 아주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 많은 세월이 흘렀으련만 이 세상의 모든 육체의 부딛침을 통
하여 알아지는 세상은 이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가장 원초 적인 인간은 누구
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의 나는 무엇때문에 여기에 있고 무엇을하고 그 함이 무
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게 수많은 어느누구도 자신 옆의 또 다른 자신의 한모습인 인간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데 이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이켜보자, 나를낳아준 부모로부
터 시작하여 전 지구인 어느누구라도 내가 실제 아는자는 누구인가,
오래 전 언제였던가 부친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난다,, " 네가 기실 안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안다고하는 것은 상대방의 속을 안다는 것인데 자기
속도 제대로 자신이 모르는데 자신이 상대방을 안다고하는 것은 다시말해 곧 자신과
타인은 하나라는 것( 일심동체 )인데 인간들이 안다고하는것은 그냥 안면이 있다가
맞는 답이 될 것이다 " 하셨던 생각이난다,,
나는 오랬동안을 인간으로서의 만물에 대한 이해와 숙성과정을 통하여 이 안다는것
을 몇년 전 까지만해도 끊임없이 내 안에서 지워지지않고 떠 올라 왔던 화두로
써 그렇게도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며 찾아다녔던 때가 눈의 각이 열리지 않았던 시기
였음을 알게되었다, 어찌하여 인간들은 하나같이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속성을 지
니고 있으며 일생 살아가는 동안 단 한번도 동시에 같은 의식체로 합체 되어지는 것
을 볼 수없는 것일까,
천태만상의 서로다른 얼꼴의 모습은 서로가 서로다른 곳에서 출몰하여 이 땅에 자신
안의 암덩어리인 부정적인 의식을 겉으로 나타낸 환영일 것이다,
느껴보라,, 우리들은 예를들어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상황을 인식하여 눈물을 질질
짜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되면 전방의 허망하기 이를데없는 횐벽을 바라보며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음을 알게된다,,, 바로 말한다면 미친놈이 따로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모습이다, 아니그런가,,,
그렇게 뒤죽박죽이 되어진 상황에서도 그곳에 나타났던 배우는 지금쯤 어디에선가
관람자의 생각밖에서 전혀 다른 실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할 때,
모든 만물의 이 땅위의 삶이라는 자체가 환영이라는 것에 데하여 덧 붙일 글도 없다,,,
어찌하여 긍정적인 의식보다는 부정적 의식인 모르는 것의 결정판이 지구라고하는
행성에서의 혼돈상태란 말인가,,
의식이 개안되기 전에는 즉 하늘에 오르기 전에는 알 수없는 우주의 참 섭리이다,
생각해보자 부모를 상대로 이 세상에 등장하고보니 형제 자매들이 생겼고 그 피붓이
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어떤 경우는 오히려 다른 남들보다도 전혀 아닌 다른 세상으
로의 이탈된 삶과 때로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존속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이유
는 무엇인가,,
분명 이 것은 부모라고하는 하나의 존재는 자신이 선택하여 이 땅에 밟고 내려온 사
다리일 뿐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잠시 눈을돌려 나무의 열매들을 바라 본다고하자,, 무수한 종들의 자연계의 삶을 함
께 돌아보자, 이때 잠시 인간들이 나무 열매대신 나무에 매달려있는 열매라고치자,,,
그렇게 매달려 있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 열매들의 실상이 어떤 상황인지를 느껴보자,,
어떤 나무의 열매든 자연의 이치에 순리를따라 있는 열매치고 그 열매는 온전하며
그냥 자연 속의 아름다운 열매이다, 나무의 모든 열매는 그 속성이 한결같이 같다
몸통인 나무의 결정여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순리를 어기지않고 공급되는 에너
지를 공급받고 때가되면 자신이 나무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나무의 의식인
열매라고하는 것을 인식했을 때 더 이상 미련을 두지않고 자신이 있음을 위하여
받아졌던 영양을 사양하고 자신의 모태인 나무로 돌려보낸다,,,
순환을위한 이치를 깨닫게하는 귀중한 대목이다,,,더러는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의식의 쭈그러드는 열매를 제외 하고는,, 이 또한 나무가 열매를
일부러 부실하게 하기위하여 모든 열매들에게 주는 영양을 불균형하게 주는 것은
아니다,, 잘 느껴보자,,,
잘보라,, 어떤 나무의 열매가 사랑을 말하며 다른 한 켠에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매달려 자신의 모태인 나무의 곳 곳을 풀어헤쳐 내장을 들처내며 무수한 상처를
내고있는지를,,
어떤 동물이 인간들이 침투하지 않는 자연의 세계에서 순리를 따르는 삶을 살지
않는지를,,, 유독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만의 불 확실성한 인식의 소산이며 인간
들에게만 적용되는 이 알지 못함,, 이 무지는 어디에서 파생된 것일까,,
왜 이런일이 지속되어 온 것일까,,, 또한 얼마나 지속되어갈 것인가,,,
왜 인간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못알아 보는 것일까,,
모든일 접어두고 일심으로 달려들면 알아지는 것일까,,
부모는, 형제는, 선생은, 선배는, 말하고 상대방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데 왜 못
알아듣는걸까,, 네가 뭔데,,, 네가아는 것은 나도 안다,, 그래서 안해도된다,,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에게 이렇게 꼬이고 뒤집히는 말과 행동이 인생살
이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역으로 한 생애를 사는동안 이름 석자도 제대로 쓰지못하고 돌아가는 무리들이 수
없이 많으련만도 단 한 생애로 알아졌다고는 할 수없는 무궁무진한 지혜는 어디에
서 기인한 것인가,,
한 예로 나는 정밀한 기계를 발상하여 설계하고 이를 체계화시켜 한 싸이클 안에서
서로가 무엇에도 서로가 간섭받지않고 충돌하지않아야 완전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알고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한 가지는 나자신 어디를 뜯어봐도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
운 기계의 내부 사정을 손금보듯이 볼 수있다는 것이 도대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기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미 머리 안에서는 모든 불 분명한 것
들을 따돌리고 충돌하지않고 원할하게 돌아가고 있는 기계를 보고있는 것일까,,
누가 나에게 전수해 주었는가,, 어디에서 그러한 복잡한 다시말해 남들은 말도 못할
정도로 복잡한 기계의 발상이 떠 오르고 재현시켜 현실에서 완벽하게 사용할 수있도
록 한단말인가, 아무리 되 뇌어봐도 나의 한 생애로서는 역 부족인 희한한 일이현실
이다,,
이 것은 단지 나만의 발상이나 남들을 상대로 생각이나 사고에서온 지구라는 한
행성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삶의 실체를 재미삼아 올려보는 글이 아니다,,
어렸을적부터 나는 성경과 가깝게 지냈다, 여러번의 통독과 대략은 성경에서 무엇
을 말하고 있으며 인간은 어디로 부터인가에 대하여 남들과 달리 또 다른 의식의
세계를 더듬어 왔던것이 나의 지난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을 겪는동안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가 바로 거듭남이라는 단어였다,,,
이구동성으로 거듭남에 대하여 말들은 끊임없이 이어 왔지만 무수한 모순의 잎
사귀만 떨어질뿐 어느 누구였던 아무리 되뇌어 보아도 매년 동일한 가르침의
연속 선상에서도 거듭남이라는 것은 허공을 향한 메아리에 불과했었다,,
대략 200 여년 전까지만해도 땅과 바다는 평평하다는 사고를 벗어나지못한 인간들
이 비일비재 하였던 바 하물며 수 천년 전의 모세는 홍해바다를 지팡이 하나로 갈랐
다는데 이 시대에는 금방망이를 들고 안갈라질 한강 물을 한번 내려치는 것은 고사
하고 말로만 깔아뭉겨도 아멘으로 백 만에 가까운 신도들을 끌어모으는 요상한
세상이다,,
하늘의 도움인지 교주들의 사념의 기운에 편승한 말 빨인지는 자신들은 알는지
몰라도 남들은 이 또한 모르는 모순의 세상이다,
그렇게 성경을 부여잡고 수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러왔어도 인간들의 의식상태는
역으로 도태될 때로 낮아져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요 일만되면 열일 제치고 제사터로 달려가도 가슴앓이의 원을 풀어헤치지 못하고
교주들로부터 또 한꺼풀의 있지도않은 죄 바가지를 덮어쓰고 나오는 것은 누구의 의
도인가,, 스스로의 체험을위한 경로의 한편인가,,
이 또한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근원으로부터 형성되어있는 (우주의 사방에서 몰려
들어온 의식체 )그렇게 천태만상 만큼이나 무한한 우주의 의식들이 서로 서로 이
땅위에 내려와 얽혀있는 실상이기에, 드러난 불 확실성한 의식의 세상이기에 이렇게
삶의 힘든여정의 강렬한 체험들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각각의 우주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못하고 떨어져나온 ( 탕자
의비유) 불 확실성한 의식체들이 다반사이기에 이 지구는 혼돈하고 힘들며 좌충
우돌하며 역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근원의 속성은 완전함이다, 이는 곧 본 바탕이며 영원한 생명이며 빛이고
사랑이다, 이 참모습의 실상이 곧 우리눈에 비춰지는 자연이요 한치의 오차도없
는 태양계의 운행이요 우주의 조화요 행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것이 원래 우리의 속성이며 있던 자리이며 지금 그리로향하여 충분한 배움의
여정에서 자신 안에 이끼처럼 끼어있던 사념의 기운을 걷어내고 이 땅에 내려와
수고하고 무거웠던 짐(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이탈되어있었던 (부정적인 의식에
불 확실성한 인식) 상황에서 모든것을 깨닫고( 이 땅에서의 연속되었던 다차원적
인 삶의 행로를 통하여 해원되어진 의식으로 거듭나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시점에 이르러있다, 이에 이 세상 아무도 먼저된 자도 없고 나중된 자도 없다,,,
온 우주에 이르러 몇 천 억광 년을 넘어 자신이 어디에서 태동했던 그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몸 안에 무수한 기관들이 포진하여있으되 거리를 불문하고
그 것은 하나의 몸이기에,, 가장 근본 적인 이슈는 우리들이 왜 잘 있어야할 곳
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힘든 여정의 체험들이 있어와야 했는지를
자신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깊이 통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의 속성외에는 영원으로의 있음그대로를 유지되지 못하기에 부득불 사랑
그리고 빛 그리고 영원을 인식하고 그렇게 되어지기위해서는 자신이 있던 자리
를 떠나 근원의 속성을 터득하게하기 위하여 내 몰려졌던 이 지구,,,
나를 알기위한 더 나아가 근원으로부터 벗어난 불 확실성한 부정성의 의식을
걷어내기 위하여 같은 젖을 먹이며 수 많은 시간 선상에서 우주의 쓰레기들을
불태워 정화시키고저 안간힘을 다해온 우리들의 어머니 지구,,,,
이제 그나마 이렇게 저렇게 어렵사리 신선한 (지구유)젖을 공급해왔던 유방은
혼탁한 환경을 유발시켜온 주범인 사념의 기운에 눌린 암에걸려 온통 멍들고
찢기고 잘리우며 패일때로 움푹 들어가 빨아도 빨아도 그렇게 맑았던 근원의
젖은 멎은 채 파헤친 흔적의 자리에는 피고름만 나온다,,
" 환골탈태 " 즉 거듭남의 자신이 곧 우주의 유일한 바램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 알아지면서부터는 패인 자신의 유방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나의 밟고 선 땅
이 보인다,,
우리는 개별의 한 의식 체인 동시에 집단의 의식이며 전체이고 우리를 안고있는
지구역시 하나의 의식 체이며 행성 간의 형제인 집단 의식이며 전체이고 곧
우리들의 산 의식의 전체임을 한시도 잊지말자,,
우주 모두가 연대하여 삼라만상의 조화가 있으며 하루 아니 단 일초라도 우리가
보여지는 육체로 기거하는 이 땅이 아무일도 안하고 있다면을 깊이 통찰해보자,,
교황이 어느 곳을 방문하여 의식의 자중지란을 바라보면서도 땅에 엎드려 온갖
잡쓰레기를 걷어들이고 뱉는 입을 신성한 땅에 비비는 것은 본질은 헤어질 수
없는 원래의 하나임을 알게하는 기회인 것이다,,,
양과 음은 곧 양자가 동시에 공존하고있는 근원의 속성이다,, 곧 있음의 조화는
영원히 근원의 예비된 뜻이었기에 더러는 이 땅에 내려와 이를 알렸던 전자들의
고언에 감사하고 그동안 보고 보이지않게 수 많은 체험으로 알아진 긍정과 부정,
있음과 없음 빛과 어둠은 곧 하나이며 상생이고 마치 태극의 한 원안에 두개의
쌍태가 서로 충돌하지않고 영원히 나아갈 수있음이 곧 살아숨쉬는 근원의
속성이다,
바로 이 속성으로의 귀환을 담당하고있는 살아있는 의식이 곧 지구이다,,,
이제 이를 알아진 배움의 끝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그렇게 돌 보다도 더,,,
암 덩어리보다도 더 단단하게 굳어있던 인식의 틀,,
불을 불로 다스려야 잡히듯이 각자 의식은 그렇게 서슴없이 받아들여 불 분명한
상태로 체험의 여정에 있었던 인식의 틀,, 이제 임박하게 다가올 한 번의 혹독한
시험을 치루고서야 자신 안의 불 확실성한 사념의 인식을 걷어내게 될 것이다,,
우주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공짜란 없다,,, 반듯이 걷어내야할 것이 있다면 상응
하는 댓가를 치루는 것이 사필귀정의 우주 법칙이다,
먹이를두고 후퇴하는 것을 터득 하기에는 역 부족이었던 인식의 틀,,사념의 기운
으로부터의 해원은 근원의 간섭이 없이는 이루어지지않는다,,,
어떤이들이 사념이란 개념을 묻는다,,,, 사념이란 무엇인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시념이란 무엇이라고 여겨지는 가,,
필자의 정의는 이렇다,, 사념이란 근원 으로부터 우주가 안고있는 태극 즉 양과
음 에는 소용 되어지지도 그리고 있지도 않은 불 확실성한 기운으로 생성된 의식의
한 현상으로 말 하고자한다,,
즉 분리의식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분별과 집착, 부정적인 사고, 결정적으로는
그렇다 아니다를 스스로 지어내어 의식화하고 이 것이 집단화 하여 배회하면서
근원 으로부터 빛과 사랑이며 그냥 있음의 세상을 교란시키고 같은 의식인 자신
들도 자신들이 모르고있는 것을 알고있다는 불 확실성한 의식으로 생성된것이 곧
사념이며 이 사념은 곧 빛이 스며들지 않는 불 분명한 의식의 한 틀이며,,,
곧 불확실성한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이 사념이란 한계의 영역이 없다,, 이 또한 한번 생성되면 영원히 사라지지않는
속성으로 빛을 대적하는 어둠이란 의식으로 공존하며 동반 진화한다..
그러나 이 말을 빛과 어둠이 충돌의 관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빛이 있는곳에는 반드시 어둠이라는 자체가 없는것이기에 환영으로 있는 어둠
이란 그 어둠 안에서의 캄캄함으로 인하여 빛을 통하여 볼 수 있는 눈이 감겨
있어 불확실성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한 빛 과 어둠임을 이해
해야한다,,,,
의식이 상승하여 빛으로 진화하면서 어둠은 칠혹같은 캄캄에서도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어둠이 물러가듯 사념의 의식에서 밝은 눈으로 개안되는 순간
사념은 말끔하게 사라진다,,
그 이 후가 곧 예수가 말했던 너희는 나의 동료요 친구이며 온 곳이 있어 가야
할 곳이 있음이 무슨 뜻 이었는지를 확연하개 알 수 있는것이다,,
(한번 비췸을 얻고 타락한자는,,, 성경엔 이런 글이 있다,,) 종교 인들의 교주들이
세를 불리기위해 아주 알맞고 뜻 깊은? 잘 우려 먹는 아주 기가막힌 글이다,,,
한 철을 사는 매미가 겨울을 알 수 없듯이 개안되지 않은 눈으로 보면 개 똥이
보약으로 보이는 목에 힘이 들어가게하는 글이다,,,
어둠이 빛을 집어 삼킬 수 없듯이 빛 또한 어둠에 묻히지 않는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는데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또한 성경의 글이다,,
상반되는 글이 아니다,,,
빛이란 곧 어떻게 글로 설명 되어지지 않는 영역이기에 나타내는 방법의 일환
으로 글로 쓰여질 뿐이지 그냥 조화의 완벽, 맞 상대가 있어야 알 수 있는 그래서
모든 생명의식이 이를 바탕으로 체험의 여정을 통하여 찾아내는 보화이며 예수
가 말한 아버지의 품인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 의식의 존재였다,,,
우리 또한 원래의 의식은 같다,,, 의식의 차원을 자신 스스로가 분리하고 어둠
가운데서 문고리를 붙들고 문고리를 찾는 스스로 도태의 길을 자처하고 있는
무지가 군중 심리에 휩싸여 일생을 평안과는 동 떨어진 길을 더불어 갈 뿐,,,,,
미석으로 꾸민 웅장한 성전?을 올려다보는 예수는 사념에 함몰되어 있는 그
안의 도태되어 있는 의식들을 떠 올리며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
오늘 날의 성전?들을 보라,, 신을 빙자하여 별별 이유를 붙이고 고혈을 빠는
용기와 수단과 방법을 잘 보라,,
어떤 신관으로 한번 무장되면 그 의식은 일생 특별한 계기가 없는한 동원하여
무한대로 세를 불려나간다,,,
거기서 자신이 받드는 영역의 신의보호? 아래 일생 종친다,,
어떤 종교던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의 입지가 이 세상에 관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거기에는 반드시 다른 신을 숭배하는 신은 가짜 이어야하는 명제가
자동적으로 따라붙는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된다는 것을 자신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그렇게 허공에 모셔져있는
사념은 결국 그렇게 부르짖는 의식들에게 불확실성하고 희미한 사념의 기운
으로 부메랑이되어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곳이 되었던 한번 헛디뎌 빠진 어둠의 종교인 우물에서 역으로
그것도 스스로 올라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것이 그런 이유인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얼빠지고 정신 나간 인간이 믿기만 하면 모든것 다 씯겨서
천국에 그 것도 영원히 살 곳으로 데려가겠다는데 생로병사에 시달리며 산
이 세상이 억울해서도 온 정신을 바치지 않을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거라
보시는가,,,,
모두가 미쳐 날뛰며 사탕발림으로 세를 불리기위한 탐욕의 무리들에게서
보여지는 근본적인 이유를 스스로는 알고 있기에,,,,,,
이해를 오해로 둔갑시키는 사념의 종들에게로 부터 가능성은 멀어 보이기에
처음에는 그리도 왕성했던 어떤 종교도 이제는 머지않아 몰락의 길을 코 앞에
두고있는것이다,,, 그렇게 멀리서 탄식의 눈물을 흘리며 예루살렘성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예견했던것처럼,,,,
부연하건대 인간이란 의식이 신을 숭배하고 섬긴다는 것은 모두가 사욕을 채우기
위한 밥그릇의 대용으로 신이나 예수 석가 마호멧이나 그 주변들을 떠 받드는
것이지 이는 의식이 개안되어 보면 우물 안 개구리들이 단 한번도 밖을 향하여
제대로 궁구해보지도 않고 찾아나서지도 않고,,,,
오직 한정된 썩은 우물 안에서 받은 사념으로 무장된 왕개구리들의 농간에 자신의
살아있는 부모를 돌보기는커녕 몇 천년 전에 이미 벗어던진 옷(예수)자락에 매달려
흐느끼는 세상에서 가장 도태된 의식들이 온 세상에 도포 되어있는 것을 안다면
하늘이 울고 땅이 통곡할 일이다,, 이슬람으로 보라 더 미치고 환장 할 일이다,,
그러나 정작 죽어있는 의식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느끼지 못한다,, 왜일까,,,,,,,,,
돌아가서,,,
구름이 일면 어떤 상태로이건 비가 오든지 햋빛을 가리워 지상을 캄캄하게 하던
지 그냥 조용하게 사라지는 예는 드물다,, 많이 끼면 낄수록 대단한 위력으로 금방
이라도 온 세상을 집어삼킬듯 위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구름이 무엇으로
부터 시작되는가, 한 기운이다,,우주 모두는 기운으로 꽉 차있다,,,
공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몸을 기운이 주관하듯이 우주 또한 근원이( 곧 우리안에 있는 속성 ) 주관한다,
그냥 있음으로,,, 생성, 성장, 소멸, 그리고 다시 소멸, 성장, 생성, 끝없는 우주의
속성은 순환의 있음 그대로이다,, 소멸의 기운은 곧 생성이다,,,
우주에는 우리들의 한계를 넘어선 보이지않는 세계로부터 여기까지 무수한 불 확실
성한 의식체들이 서부영화의 부랑아들처럼 떠 돌아다니고 이러한 의식체들이 연대
하여 이 지구상의 혼미한 의식체들에게 다라붙어 근원으로부터 예비된 이 지구학교
의 정화를위한 원대한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말자,, 우주에서 죽음이란 없다,, 오직 근원으로 부터 모두는 영원한
세계를 영원히 인식해가는 체험의 기운이며 모두를 포용하고있는 참 의식이다,,
산모는 산 고의 큰 고통을 치룬 뒤에 옥동자를 낳듯이 모태인 지구로부터 이미 거듭남의
진통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머지않아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길길이 띄며
날며 형용할 수없는 기쁨과 평안의 의식으로 부 조화를 이루고있는
사념으로부터 해방된 우주와 하나가 되어갈 것이다,,,
이 글의 긍국적인 목적에서 부정성 그리고 불 확실성한 인식을 소유한 의식체들의
기운을 이 분법으로 나눠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밝혀
둔다,, 굳이 따지려든다면 긍정과 부정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정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의식 안에있는 것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것이 글과 말이기에 이해의 상관계는 자신의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이해의 정도
에따라 천차 만별로 나타날 수있다,,
그동안 오랜 시간동안을 체험의 과정을 통하여 봉인되어있는 각자의 불 확실성
했던 인식의 틀이 근원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깨어질 시간이 가까워오고있다,,,
죽을 수없는 원래의 산자였기에 죽였어도 살아있었던 영원한 생명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않는다,,
오묘한 말이며 뜻깊은 우주의 섭리를 대변하는 말이다,,
한 인간을 우상시하여 섬기고 숭배하여 얻어지는 결과로 되는 것이아닌 원래의
영원한 인식의 세계를 내가 한 말을 너희가 믿으면 너희는 죽어도 사는 불멸의
의식체임을 알게되고 이를 인식한 살아있는 존재는 죽음이라고하는 것은 있는
것이아닌 사념체들의 농간이었음을 알게되고 이를 알게하려고 더러는 고 차원
으로 확장되어있는 의식체가 방문하기도 실상은 자연의 섭리를 통하여 끊임없이
드러내어( 곤충의 부화, 식물의 벗음과입음, 인간의 오고감등,,, )주고있다,,
각 종교에 인간들이 또아리를 틀고 달려드는 것은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의 희귀
본능이 연어와같은 속성이 내제 되어있어 어느누구라도 종교성이 없는 것은 없
다, 심지어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안믿는다 하지만 그조차도 아무 것도 믿지않는
것을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식의 확장으로 보이지않는 세계와 보이는세계의 관통은
물질위주의 기복적인 사상으로 점철되었고 붙박이가 되어버린 고정 관념의
틀은 이제 이 세상 그 어느것으로도 교화시키거나 얼르고 달래며 일순간 조건
이나 환경을 바꾼다고해서 정화되어지고 해원 되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불 확실성하게 자신 안으로 끌어드려진 혼탁한 의식으로는 새로운 우주
의 법칙? 안에서 조화의 길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이렇게 각자의 틀 안에 자리잡고있는 물질 문명에대한 집착과 사고는 어떤 큰
난리를 통하여 뒤 집어 엎지않고는 뒤 바뀔 수없는 불변의 틀로 자림 매김하였
기에 근원은 이제 막 이 일을 실행 하려하고 우리들의 모태인 지구의 정화를
이미 시작하고있으며 급기야는 상상할 수없는 이변을 통하여 각자 본연의 의식
을 자신 스스로가 철저히 느끼고 알 수있도록 우주의 섭리는 이를 실행할 것이다,
이는 인간 내 면에있는 불 확실성한 의식을 송두리 채 뿌리뽑고 그동안 자신 안에
축적 되어온 얼마만큼의 인식의 확장을 토대로 각자는 자신의 앎의 의식으로 돌아
와 각자가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또한 어느 곳이라는 것에는 의
미가없다,,
우주에는 육하 원칙이란 없다,,, 시간선상에 존재하는 결여된 의식체들에게만 필요한
공간의 개념이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 없이 들어온 우주의 모습은 몸에 비유
되기에 이 곳에 남아있던 어디로 가던 근원의 뜻은 자신의 속성을 찾기위한 일에
열중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사랑으로 빛으로 근본으로,,,
이러한 원대한 우주의 어떤 계획 즉 각각의 부정성과 그 중에서도 공격성이강한
사념체들이 자신을 이루고있는 무리들을 정화시켜 우주의 온전한 일원으로 복귀
시키는 일을 진행하고있는 중에 근원으로부터의 실상을 이탈하지 않았던 예수님
과같은 존재들이 이를 알리고 깨우치려하였던 것이나 실상은 인식의 확장을 더욱
더디게하였던 사념체들의 극성으로 정화의 수순은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것이다,,
인간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해 내려왔던 경전이라는 것을 품에 끌어
안고 자기식대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동떨어진 죄라는 틀을( 족쇠)
만들고 합세하여 세상의 순리를 떠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전가하며 살아간다,,,
각 종교의 교주들 또한 부정성이 두드러진 사념의 존재 의식에서 알을깨고 바로 거
듭나지 못했기게 매년 꼴사나운 자리에 서서 한소리 또하고 또하며 할 수있는 유일
한 방법인 하늘과는 무관한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들도 자신들이 겁증도없이 덥
썩 받아들인 올가미에 자신들도 걸린채 신의 이름으로 두려움만 가중시키니 입은
신을 섬기고 숭배하나 실상은 힘의 논리로 일괄하며 온 세상을 피빗으로 물들이는
사념체들의 노리개들로 전락해있는 것이다,,,
사랑을 말하나 사랑하지않고 자비를 말하나 자비를 베풀지않고 이기적이고 독선적
이며 자신들의 동료들인 천국 백성? 들끼리도 서로가 등을돌리고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가장 근본 적인 문제의 발단은 어느 종교 든지간에 먹고 입고 싸는일에 사랑인 신을
두려움으로 섬기게하고 숭배 하게하여 확장 되어야 할 인식을 더디게하고 남보다
뒤질 수없는 사심의 발톱을 숨긴채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벌이는 신을 마치
세상의 조상내지는 부모로 착각하게하는 기기묘묘한 발상에서 연한 가지들이
꺽여 그 재생의 시간이 어느 계기가 오기까지 너무도 장구한 시간이 지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 인들의 도태되어있는 의식은 말로
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눈의 각이 열리면 아주 간단하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졌던 것처럼,,,,
바울도 우리처럼 많이 궁구했을 것이다,, 어느날 그가 생전에 대면하지도 못했던
예수의 말씀이 하늘의 음성으로 받아 드려졌을 때,,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하늘에서 풀면 땅에서도 풀린다는 말에 머리털이
쭈뼜서고 가슴은 천지가 진동 하리많큼 자신의 산 의식을 강타 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음
성이 들리기를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 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예수는 곧 하늘의 그리스도이며 본래 예수는 하늘의 아들 즉 근원의
속성으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우리 또한 근원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나
본래의 속성은 근원의 한 종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것을 감지했던 의식
체들은 일찌기 예수가 어디에서왔고 누구이며 나와 예수와의 관계 그리고 근원으
로부터의 우리모두는 하나임을 알고 요한같은 제자는 그를 일컬어 생명이며 말씀
이고 빛이며 사랑이라했다,,
그렇지 않음에 예수가 천 만번을 요단 강의 위 아래를 들락거린들 그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란말인가,,,
더 나아가 일면의 의식이 완전히 개안되면서 요한은 예수사후 70여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글 요한복음 7장인 << 예수의 기도 >> 를 스승과 동일한 의식체로써 기술
할 수있었던 것이다,,
어떤 기독교 신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아니 기독교 인 대부분은 교주 들로부터 물려
받은 성령이라는 것을 들어 이리풀고 저리 설명하려들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있는 성령이라고 넘겨받은 사념의 의식체는 교주들이 자신들의
우리를 형성하고 유지하기위해 우물안의 개구리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환영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런 류들의 보이지않는 의식의 세계인 靈 이라고하는 것은 어느 종교나 동일하다,,
한번 자신 안에 인식 되어진 틀 안의 불 확실성한 의식은 믿음이라고하는 편에서는
자신이 믿던 신을 접고 타 종교로 귀의했다해서 역시 바뀐 곳의 이름이바뀐 신?을
숭배해도 저신이나 이신이나 이름만 바꿨을뿐 섬기고 숭배하는 신은 같다,,,
아마도 바울이 이를 외면하다가 하늘사람이되어 일 순간 깨닫고 인간의 아들들이
있고 하늘의 아들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백주에 하늘의
음성을듣고 쓰러저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던 것을 통하여 그는 분명
자신이 원래의 본거지는 이 곳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후 그는 삼층 천이라고하는 가히 상상할 수도없는 본연의 자신이 알고있는 다른
차원의 우주의 실상을 목격하고는 또한 가히 자신의 본 것을 아무리 말해도 알아들
을 귀가 그 당시에는 없었기에 그냥 알고있는것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의 각이 열린상태에서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식
의 차원을 벗어나 전혀 다른 의식의 차원인 그리스도의 의식을 느낄 때 알수있다,,,
그래서 맹종성이 강한 부정 적인 의식체들이 성경을 대하면 섬기고 숭배하는 신을
만들어 해맑은 의식체들을 교활하게 꼬여서 사념에 물들게하지만,,, 의식이 개안
되어 성경을보면 바울의 신앙 상태는 물론 인간들 자신들의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정도를 가름했던 당시의 의식상태를 기록한 그냥 경으로보인다,,
바로알면 최근에 성경적으로 문제라할 수있는 도마복음이나 유다복음 그리고 외경
이라하는 그 당시의 여러 기록의 문서를 보아도 아무런 편견이나 분별이없는 있는
그대로의 기록 적인 인간의 의식 상태만을 알수있을뿐이다,,,
바울이 당시에 자신이 안다고 알고있었던 지식과 더불어 겸비했던 모든 것을 초개
같이 훌훌 털어버렸던 그의 의식을 느껴보라,, 잡아 죽여야하는 원수들로부터 갑자기
같은 원수로 인식했던 예수를믿고 구원받으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해서,,페일언하고
그 말이 자신에게 확증 적으로,, 하늘에서 그래라 하고 말해준 의식으로 다가 왔다해서
갑자기 지난 것 모두를 버리고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고 결심 했다해서 검은 색이 횐 색
으로 순식간에 뒤 바뀔까,,
이 글을 읽을 기독교 인들은 글을 다 읽은 후에 자신에게 어떤 사념의 틀이 형성되어
있는지는 알수있을까,, 도리어 욕하고 이 천년 전의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앞 다리를
붙잡고 좀 도와달라고 떠나면서 전부 버려야할 소멸의것들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불
확실성한 인식의 틀을 걷어낼 수있을까,,,
오늘 날 아주 유명하다는 가르치는 자들에게 당신 가는길이 틀렸소 당신은 원래가 하늘
사람이요, 헸갈리지말고 돌이키시오 한다면 과연 누가 대통령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위대
한 종? 교주의 자리를 내어줄까,, 자신이 우물 안의 왕 개구리인 것을 알기나할까,,
만약 작금의 현실에서 자신들이 가르치고있는 신자들에게 갑자기 기수를 바꿔 예수
께서 바로 가르친대로 선제론을 말해보라,, 우리 모두는 원래 예수와 하나이다" 라고
우리가 곧 예수이다하고,,, 아마도 가르치는 분들의 가족이나 아니면 식구 한 명을
제외 하고는 아무도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인들은 모두가 제 갈길로 가면서 하나로 의식이 통일되지 못하고
사념의 틀에 달려있는 가운데 자신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지못하고 알려하지도
않는 교주들은 들어서 알게된 풍얼을 읽어대고 사념의 기에 눌린 신자들의 고혈을
빠는데만 열중한다,, 어항 안에 금붕어는 때깔은 좋을찌 몰라도 들어간이상 죽어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의 어항 안의 물고기인것을 떠올려보자,,,
어찌보면 말 한마디에 졸지에 가장 비참한 실업 자들의 영 순위가 곧 종교인들의
교주들일 것이다,,, 이 또한 해원 되어저야할 그들의 몫이며 그들은 그 일을 통하
여 또 다른 차원의 인식의 확장은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우주의 섭리이다,,,
아마도 나의 판단으로는 성경을 이기적으로, 또는 사욕이나 이익을 챙기려했던 집
단들이 자신들이 인식 되어졌던 당시의 상황들을 제대로만 기록해 왔어도 오늘 날
인간들의 의식상태는 전혀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있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어차피 인간이 하늘사람으로의 희귀를 자신 스스로가 깨닫는 순간이오면 바울이
못다 전해준 또 다른 본래의 세상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이 땅에서 단 한번의 생애로 살다가 죽어 예수의 도포 자락을 붙들고 어디로
간다고하는 것은 사념 체들을 덮어쓰고 아직도 빠저나오지 못한 자신들이 누구인지
를 분간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욕의 영리만을 채우려는 우주의 쓰레기들이요 분별과
편견을 헤집고 다니는 에덴의 뱀들이다,,
예수는 말씀했다,,, 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이런 청천벽력의 아연실색할
엉뚱한소리는 무슨소리였을까, 그분은 멀쩡한 자신과같은 인간들에게 그랬다,,
그들이 과연 뱀이었을까,,, 선악과?를 따먹게한 뱀은 어떤 뱀이고 예수가말한 뱀은
우주에서 날아온 또 다른 뱀인가?
희한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와서 인간들에게 뱀이요 독사의 새끼들이라 했다는 데도
아무런 저항이나 신의 아들이 어찌 그런말을 할수있는지를두고 유구무언이라는 거다,
또 한편으로는 네 이 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네 몸처럼 사랑
하라는 것이었다,
안맞아도 너무 모순되는 이 세상에서는 말같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 예수는 왜 그런
말씀을 했던것일까,, 그리고는 들을귀 있는자는 들으라 했으니,, 환장할 일이다,,,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늘 말을 땅의 말로 들은 자들을 뱀이라하니 분별의 의식에서
인간 뱀들이 예수와 충돌했고 뱀들은 예수를 죽였다, 오늘 날도 이 뱀들이 가장
지혜? 롭다,,,,
이 세상에 같은 종자로나와 뱀되기 원하는 자가 누구이며 들을 귀 달고 막고 다니는
자가 이 땅위에 몇이나 있단말인가,, 예수께서는 그당시의 인간들의 의식상태가
얼마나 願 이 遠 으로 가 있었기에 이런 말을했던 것일까,,, 오늘 날은 어떠한가,,,,
각자가 우주 사방에서 지구로 모여들어 근원, 빛 , 사랑으로 " 환골탈태 " 하는 여정
에서 예수를 만났고 곧 자신일 수있는 예수를 본 자는 그가 말한 하늘 사람인 그리
스도를 보았고,,,,
근원 앞으로 나아감이 더딘 부정성으로 점철된 탐욕이 탈색되지 않은채 있었던 불
확실성했던 의식체들은 그리스도였던 예수를 자신들과 같은 뱀의 무리중에 끼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수월하게 예수를 십자가에 매어달 수있었던 것이다,,,
의식이 하늘사람으로 개안되지 못한채 수 천만 년을 이 땅에 남아 살아간들 끊임없이
갈등하며 시기하고 분별하며 생로병사에 시달리며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 있지않을까, 다 나아가서 면밀히 살핀다면 설령 아무 것도 없다해도 무엇인가
그냥 먹고 입고 싸는일에 전념하다 만에하나 있을 것이 모르므로 덮여있다면 이 얼마나
애통할 일이겠는가,, 이제는 서서히 눈을 떠야할 시기이다,,
억만분의 일이라도 우리가 근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계획한 일에 함께 어우러짐이
여기에 우리들이 있음은 그 것이 설령 없는 것이라해도 인간의 근본을향해 나아가는
사랑하고 영원에 이르고싶은 본성은 이를 떠나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일 천억분의 일이라도 하늘과 인간이 맟닿아 있다면 찾아야할
나의 願 이었다고,,,
우리는 온 곳이있어 가야하고 가야할 곳이있어 끈임없이 어디론가 가려고하는 본래
의 속성을따라 수 많은 곳을 두드리고 걸식하듯 휘젓고 다니는 것도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인간의 의식은 영원함을 알았고
근원은 곧 생명이며 빛이고 사람이며 아버지임을 알았다,,,
탕자는 비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서야 ( 부정성,곧 영원에대한 불확실성한 의식 )
아버지의 품이 원래 자신이 떠나온 곳이었음을 알았고, 이를 알고있었던 아버지는
자식이 떠난 뒤로 단 한번도 잊은적이 없었던 아들이 언젠가 돌아오기 전의 동구밖
무한의 기다림이었다,,,
근원을 떠난 오감만으로의 삶은 깊은 체험으로 이어지는 행로의 여정일뿐 거듭났
다고 하는 것은 이를 바로 인식하고 모든 것은 순리를 따라 하늘의 섭리대로 어느 것
에도 동요되지 않으며 이 지구상에서의 남은 때를 정리해가는 것,,,
우리는 그렇게 우주에서 그어느 의식체들보다도 부정성이 강한 더우기 불 확실성한
부딛혀 충돌하는데 가까운 의식체들이었다,,,
이를 바로 알고 우주의 온전한 의식으로 거듭나려고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부서질대로
부서지고 깨지고 찣어지며 신물나게 수 많은 다생을 통하여 무수한 체험을 해왔다
우주는 이런 의식체들을 지구라는 행성의 학교에 투입시켜 그 부정성,,, 불 확실성한
사념으로 점철된 의식을 걷어내고 변화 산상을 통하여 선험 적인 인간의 빨래함이
그렇게 희게할 수없었던 예수와 제자들의 참 하늘 모습인 의식으로의 희귀를 바라고있다,,
무수하고 다양한 체험을통한 탈바꿈의 과정속에서 무수히도 자신의 부정적인 의식을
걷어냈던 공부는 이제 거의 끝 지점에 와 있다,,
나는 그렇게 어느 날 찾아온 내 안의 신성한 의식 너는 나로부터 와서 나에게로 돌아
온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진 근원의식( 근원의식은 우주 삼라만상 모두의 근본이요
분별과 집착과는 상관이없는 온전한 사랑이며,빛이요,절대 평안 )의 실상을 느낀다,,
두서없는 글 이었어도 그냥 느낌을 따라 손이 따라다닌 길이다,,,글로 작금의 심경을
옮겨본다,,, 평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