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음악 편지 37

by 아랑(芽朗) posted Dec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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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음악 편지 37 - 그림(책 커버).jpg









식물에는 마음이 있다
植物には心がある

하시모토 켄(橋本 建)

번역 : 부희옥, 천상욱, 김훈식
내용수정, 보완 : 아랑(芽朗)





아래 글은 "식물에는 마음이 있다"의 책의 내용으로서, 
자연음악 편지에서 조금씩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자연음악 편지 28호", "자연음악 편지 33호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전에 보내드린 내용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위의 링크를 따라가세요.









7. 식물도 '기절'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심리적인 충격에 의해서 몸이 경직되고 심하면 ‘기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식물에게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앞에서 벡스터의 연구소에 견학 왔던 캐나다의 식물생리학자 이야기를 했었다.
이 학자는 식물이 건조된 상태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 매일 식물을 전자레인지로 태워서 죽이는 일을 했었는데, 
그가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는 대부분의 식물들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즉, 정신을 잃은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그의 다른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다. 
즉, 어느 날 벡스터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뭔가 참고가 될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지프 라인 (Joseph Banks Rhine)’ 박사 를 방문했다.
라인 박사는 부인과 함께 미국 듀크대학(Duke University)에서 투시와 텔레파시, 예지, 염력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수행하여 '초심리학(Parapsychology)'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다.
처음에는 일반 과학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이 분야를 끈질긴 인내심을 갖고 꾸준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세상에 널리 알려, 
현대 과학의 한 영역으로서 인정받게 만든 공로자이다. “초능력(Extrasensory Perception - ESP)”이라는 단어도 그가 최초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와 함께 벡스터는 식물이 투시를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고자 했다. 


라인 박사와 그의 친구 카를 제너(Karl Zener) 박사는 초능력을 검증하고자 한가지 실험을 고안했는데, 
그것은 ‘ESP카드(Zener cards)’라는 다섯 종류의 마크가 새겨져 있는 카드를 임의로 뒤집어 놓고 사람들에게 그 중 한 장씩을 ‘투시’시켜 맞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벡스터는 ESP카드의 다양한 문양을 식물이 알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실험을 좀 더 단순화 하기로 했다. 
그래서 ESP카드 대신에 트럼프를 사용하고, 단지 트럼프 카드의 빨강 혹은 검정의 색상을 맞추도록 하는 방법으로, 이때 식물의 반응을 관찰하고자 했다. 
또한 감지기로 감지될 만한 큰 반응의 유도를 위해서 맞추는 결과에 따라서 식물에게 다소 잔혹한 ‘대가’가 주어지도록 했다.


실험은 이렇게 설정 하였다.
먼저 식물과 식물에서 떨어진 잎의 반응이 같다는 것에 착안해서 식물의 잎을 30장을 준비하고, 차례대로 그 잎을 감지기를 연결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두 개의 그릇을 준비해서, 한 쪽 그릇에는 물을, 다른 한쪽 그릇에는 식물에게는 상당히 유독한 아세톤이라는 화공약품을 넣어두었다. 

이렇게 설정한 뒤에, 식물 바로 앞에서 사람이 카드를 섞은 뒤 한 장씩 뽑도록 했다. 
검정 카드가 나오면 식물의 잎은 물에 적셔지지만, 빨강이 나오면 아세톤에 적셔 식물의 잎을 죽이는 방식 이였다.
또한 물이든 아세톤이든 한번 적셔졌던 잎은 떨어트리고, 실험되지 않은 다른 잎에 감지기를 다시 연결해서 똑같은 실험을 수행했다.

그런데 빨강 카드로 인해서 두 번째 잎이 아세톤에 적셔진 이후, 세 번째 잎부터 모든 잎들이 감지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즉 모든 식물의 잎들이 마치 인간의 쇼크 상태와 같은 상태에 빠져 버린 것 이였다. 
감지기의 바늘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단지 직선만이 기록되었다. 기절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나올 카드 중에 빨강색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지하여 그렇게 반응한 것인지, 단지 식물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실험에 공포를 느껴 집단으로 기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식물을 키우든, 실험을 하든, 어떤 이유로든 식물에게 공포를 느낄 수 있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한 행동은 분명히 생육을 저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식물을 고통스럽게 해서 식물을 통해서 알거나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단하게 될 뿐이다. 







자연음악 편지 37 -  사진 (클리브 벡스터, Cleve Backster).jpg


- 클리브 벡스터, Cleve Backster -











8. 식물 세포의 마음


벡스터가 수행한 실험에 의해 밝혀진 식물의 신기한 능력들을 생각다하보면,
이러한 능력들이 식물의 어떤 부분에서 근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생각해보면 동물에는 오감(五感)에 관계하는 기관을 따라 그 감각이 뇌라는 중추에 통합되어 있다. 
그래서 육감(六感)이라 할 수 있는 초능력 역시 최종적으로 뇌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리라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에는 동물의 뇌를 대신하는 기관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벡스터의 실험을 통해 공포나 편안함, 애정등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심리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인간의 텔레파시 등을 감지하는 고도의 '지각능력(知覺能力, Perception ability)' 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식물의 어느 부분에서 감지하고 반응되는 것일까.


그 의문을 풀고자 벡스터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먼저 식물의 잎을 따서 감지기에 연결을 했다. 그러자 식물 전체에 연결했을 때와 다름없는 반응이 나타났다. 
식물에게 잎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비중만큼 이 잎에 특정한 기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식물들 중에는 단지 잎만으로 생장과 생식을 하는 부류들도 있다. 그래서 잎이 보인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세하게 잎을 분쇄하여 가루로 만들어 그것을 감지기의 전극 사이에 끼워넣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식물 전체에 연결했을 때와 같은 반응이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식물의 세포 수준에서 지각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작은 세포 하나하나에 그러한 지각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벡스터는 생물의 ‘세포’ 자체부터가 지각능력이 있다는 가정이 서자,
더 나아가 아메바, 짚신벌레, 효모, 혈액, 정자 등 여러 종류의 단세포에 감지기의 전극을 연결하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험해 보았다. 
그러자 모두 식물과 똑같은 지각반응이 나타냈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이한 것이 있었다. 
정자의 세포는 다른 남성들에게는 반응이 전혀 없었는데, 자신이 만들어진 몸 즉 사정한 남성에게는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세포 수준에서의 지각은 초심리학에서 ‘근원적인 지각’또는 ‘원시적 감지력’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벡스터는 어쩌면 이 지각능력은 세포 수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까지 생각했다.
즉 더욱 더 작은 단위 이를테면 ‘분자, 원자, 원자핵, 중성자, 양자, 아원자 입자’ 등 작은 단위부터 시작될 수 있으며, 
나아가 물질을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소립자(Elementary particle)’수준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규명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사실상 우주의 근원질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연구가 진행될 수록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을 나누는 최소단위 까지 포함된 ‘미시세계(Microscopic world)’역시 규명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양자역학으로 밝혀진 미시계 입자의 현상만으로 생각해 보아도, 벡스터의 가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미래에 식물의 지각능력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에 대해 벡스터가 가졌던 의문은 풀리리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단 하나의 세포 속에 이러한 지각능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수준에서 이러한 지각능력이 시작되는지는 별개로,
어째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곤충이든 모두 똑같은 수준의 지각반응이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약 46억년 전, 지구가 태어난 이후.
지구에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후 자연적으로 발생되었든, 신화의 이야기들 처럼 생겨났든, 외계에서 날아온 것이였든 상관없이 어떤 생명체도 없던 지구에 단 하나의 생명체가 출현했다.

그 단 하나의 단세포 생물은 자신을 '복제 - 생식'하며 지구 곳곳에 퍼져갔고,
새롭게 진입한 곳의 환경이나 다른 개채와의 상호적 필요에 따라서 동물과 식물, 곤충등로 나뉘고 진화를 반복하며 전 지구적 공생관계를 넓혀갔다.
그렇게 되어 결국 오늘날과 같은 다양하고 수많은 생명체로 얽힌 푸르고 역동적인 지구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조상은 같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과학적 연구 결과만 보아도 알수 있다.
기본적인 세포 구조나 유전자(DNA)는 거의가 동등하며, 유전자의 구조나 형식, 구성체등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심지어 모든 생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가 거의 같은 지각반응을 보인다는 것 역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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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ustration by Y-K- 


















9. 지구의 역사가 기록된 식물



실제로 식물이나 둥물 모두 같은 생물이었다는 것을 추정하게 하는 단세포 생물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

바다에 사는 갯민숭달팽이 종류인 '엘리지아 클로로티카(Elysia chlorotica)' 라는 생물은 식물에게만 있는 엽록소를 갖고 있고,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분명히 “식물”이다. 
생김세 마저도 나무의 잎과 비슷해, 멀리서 보면 나무의 잎이 물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포의 일부가 길게 자라 꼬리처럼 되어 있어서 그것을 움직여서 수중을 헤엄칠 수 있다. 
즉 한 개의 개체로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동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생물은 식물과 동물도감에 동시에 게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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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지아 클로로티카(Elysia chlorotica), 푸른민달팽이 -







일반적으로 생물이라는 것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작용을 할수 있는 것을 말한다.

우선 첫째는 물질교대를 통해 '재생산'(Reproduction)을 행하는 것, 즉 외부로부터 자신의 몸에 필요한 물질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물질은 배출해가면서, 
자신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질을 내부에서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러한 물질교대를 행하면서 생명체로서 '안정'(Stabilization) 즉 외형이나 내용이 거의 변하지 않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자식으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즉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생식'(Reproductive) 능력을 지닐 것이다.

이들 중 한가지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생물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엘리지아 등의 광합성이 가능한 단세포 생물들은 훌륭하게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주변 상황을 지각하여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해 쾌적한 환경을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이것은 작은 세포 단 한 개 안에 그러한 복잡한 능력과 어떤 일정한 의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한다면 유전자 수준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보면 식물의 잎을 분말로 해도 식물체 전체와 똑같은 반응이 일어나는 현상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수준에서 이야기 한다면, 세포의 기억이라는 것에 관한 다음과 같은 실험이 있다. 
먼제 인공적으로 밤과 낮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실험실을 만든 다음, 그 안에서 나팔꽃을 키워 어떤 조건에서 생장이 가장 좋을까를 관찰 조사하는 것이다.

그러자 하루를 20시간으로 설정 했을 때 가장 생장이 좋았으며, 최초의 꽃을 피웠다. 
하루의 길이를 20시간보다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했을 때는 발육속도가 느려졌다. 
같은 실험을 토마토에서도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하루 20시간의 사이클에서 가장 빨리 열매를 맺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부터 약 4억년 전의 실루리아기(Silurian Period), 즉 식물의 선조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시대에는 하루의 길이가 20시간이었다고 한다.

사실 지구가 태어난 이후 46억년 동안 지구의 공전, 자전 궤도와 주기는 일정하지 않았다.
지구 자체의 변화, 운석 충돌, 지구와 태양계 각 행성 및 달의 위치 변화로 인한 행성간 인력변화, 
그리고 태양 흑점의 대폭발로 인해 항상 변화되어 왔던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그러한 변화는 진행중이며, 과거의 변화들에 의해서 현재 지구의 자전주기는 24시간이 된 것이다.
따라서 육상식물에는 자신들이 탄생했을 당시의 하루의 리듬이 기억으로서 유전자에 각인되어,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전해졌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자연음악 편지 37 -  그림 (Cardinal Grand Cross. 2014).jpg


- 카디널 그랜드 크로스(Cardinal Grand Cross), 2014 -


(위 그림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태양계 행성배열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점성계와 영성계의 일부에서 큰 의미를 두었다)













10. 식물의 신성성



식물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보게 되면, 그 비밀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먼 옛날로 시간을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은 보통 “지구상의 생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동물을 연상한다. 멸종하는 동물등과 같은 화제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멸종하는 식물들에 관해서는 식물학자들 사이에서 조차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에 속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보전이라는 시점에서 산림과 녹지등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구의 생명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식물이다.

이 지구가 태어난 이후,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갖춰지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물 속에 생명의 근원이 나타난 것은 약 20억 년 전의 일이다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단세포 생물로 진화하고, 그것으로부터 동물과 식물로 나누어진 것이 약 18억 년 전이었다. 

그리고 약 4억 년 전에 처음으로 식물이 육지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지구의 생명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였다.

왜냐하면 만약 최초로 동물이 상륙하려고 했어도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물의 먹이가 없기 때문이다. 즉,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륙에 관해서는 식물 쪽이 선배일 수밖에 없다.

동물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영양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동물들은 식물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식물은 자연계에 있는 물과 대기, 태양빛과 대지를 이용하여 스스로 영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식물은 영양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의 과정에서 산소를 생성하여 모든 생명의 생존기반이 된다.
이른바 “생산자”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이것을 오로지 먹기만 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영원한 “소비자”인 것이다. 
이것이 동물과 식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먹는 식량은 사실상 모두 식물이다.
쌀과 밀은 물론이고 육류 조차도 동물이 식물을 먹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식물들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즉시 동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 코넬대학(Cornell University)의 식물 진화 생물학자 '칼 니클라스(Karl J Niklas)' 박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지구의 변화는 우선 식물에서 일어나고 그것이 전 지구적인 환경의 변화로 이어졌으며, 결국에는 동물의 존립과 진화를 크게 좌우했다고 한다.

공룡이 등장하게 된 것도 식물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육상 생명의 등장은 식물이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생명을 위한 “생존 준비” 를 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결국 지구 생명의 역사는 사실상 '식물의 역사'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음악 편지 37 - 그림 (illustration by 防人).jpg



- illustration by 防人 -







그런데 상륙 직후의 이끼, 양치류 등의 식물들은 해안선이나 연못 등 물이 있는 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들이 지닌 생식 시스템은, 생식기관 까지 정자가 물 속을 헤엄쳐 와야만 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물가만 맴돌 뿐 더 깊은 육지로 퍼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물들이 고안한 것이 바로 생식시스템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었다. 
즉, 꽃가루관에 의해서 정자를 알까지 인도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수정된 수정체를 일정한 영양분과 함께 딱딱한 껍질로 감싸 버린 것이였다.

이것이 바로 씨앗이다.
이것은 추위와 건조에도 강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았으며,
물가가 아니더라도 비가 올 때 뿌리를 내려서 땅 속의 수분을 흡수하여 성공적으로 생착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이제 식물에게 있어 육지로의 진출은 거리낄 것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생성 이후 줄곧 척박했던 육지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지를 뒤덮듯이 넓혀 나가게 되자, 이번에는 점점 키를 크게 하여 위로 뻗어 나아가게 되었다.
그 진화 과정에는 강건한 “줄기”의 발명이 있다.
진출한 곳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이나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생리 기능을 위해, 
광합성을 위한 태양의 광자 에너지(Photon energy)를 효율적으로 흡수할 필요가 생겨났고,
이에 대량으로 잎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자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단이 필요해졌던 것이였다.


그렇게 하여 약 4억 년 전에 상륙을 완수한 식물은, 5천만년 후에는 지구상에 거대하고 풍부한 숲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겨우 20만년 전에 그런 숲속의 식물들 사이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정교한 동물처럼,

식물들도 복잡한 방식으로 그들의 환경에 반응하는,

고도로 통합적인 생물체임을 보여주고 있다.”


- 식물의 진화 생물학, 칼 니클라스(Karl J Niklas) -





이런 과정을 알게되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즉, 지구에 공생공존의 거대한 생명의 장을 열고,
그 영역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넓히고 크게 하여, 모든 생명을 위하려는 강인한 '의지' 말이다.

식물과 그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의 삶을 단순한 생존활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집단적이며 정교하고 치밀하여,
마치 고도로 발달된 어떤 '문명의 의지' 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실 지금까지의 지구 역사와 현재에 있어서 식물의 역할과 그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그 '의지'는 지혜롭고 현명했으며, 높은 '의식'에 따른 것이였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한 생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려 18억년 전에 나타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영원히 존속가능할 정도의 대자연을 만들어낸 식물들과,
겨우 20만년 전에 태어나, 산업화 이후 단 100년 만에 그 대자연과 자기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우리 인간들과 비교해본다면,
그것이 과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고, 존재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그들에게 그랬듯이, 신(神)이라는 표현 까지는 할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는 그 의지와 의식을 '식물의 신성성(神聖性)' 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이어지는 다음 내용은 몇주 후에 보내드립니다)


















자연음악 편지 37 - 그림 (illustration by solalis) 01.jpg


- illustration by solalis -









1. 미션 (The Mission)




2. 가브리엘의 오보에 (Gabriel's Oboe)




3. The Mission, Gabriel's Oboe 합본




작곡 -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오보에 - 데이빗 애그뉴(David Agnew)
지휘 - 데이빗 베드포드(David Bedford)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1986








자연음악 편지 37 - 그림 (illustration by solalis) 02.jpg


- illustration by solal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