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버스럭 버스럭 산기슭 걷다가
도저히 상상치 못할 메마른 곳에서
이런거
한 무더기 불현듯 만나보아라
집 나갔다던 이웃집 큰형 만난 것 같지 않나

어느 어렸던 날
뒷동산 결코 멀지 않은 골짜기
꽃 그늘아래 진달래 꽃 가쟁이 하나 입가에 물고
벌렁 드러누워 먼 춘궁기의 빈 하늘 응시하던 형!
그 비밀스런
지난날이 생각나지 않나
..........

얼마 전 출장을 다녀오면서도 보니까
차창 밖 산기슭에도 진달래가 방금 구워낸 분홍빛 솜사탕 같았다.

입에 넣으면 솜사탕만큼 달지는 않지만
어쩐지 향과 감촉이 비슷하게 감돈다는 것을 아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매년 이맘때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를 보면
옛날 생각이 진달래 꽃 무더기처럼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처음 입에 넣을 때는 옅은 아카시아 닮은 꽃 향기가 달착지근하다가
이어지는 환한 솔 향

그래서 욕심껏 한 주먹 가득 훑어 입에 물었던 봄날의 향을 기억한다.
그 나른하고 평화롭던 숲 속이 생각난다.

봄 양지 가득한 산비탈에 기대어 누우면 온통 바람이 햇빛이 가슴을 휭 하니 훑고 지나가고 몸은 봄볕에 노출된 필름 땅속으로 한없이 젖어 인화되는듯 녹던 봄

풋풋한 흙 냄새 바스락 귓가에 들리던 새순 돋는 소리 가만 들여다보면 어느새 온갖 벌레들이 꼬물꼬물 돌아다니던 그래서 내 몸도 괜히 여기 저기 스믈거리던
그때 그 훈훈한 김 피어오르던
그 땅이 생각난다.

그때쯤 더러는 춘궁기였고 학교에선 더군다나 구충제를 나누어주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빈속에
그 엿같이 달고 익모초같이 쓴걸 씹어 먹으면 오후 내내 세상이 노랗게 출렁거리던 기억

농사일이 시작 된 들판과, 푸른 보리밭 건너 저 멀리 아지랑이 바람을 타고 들리는 소방울 소리가
그 바람에 엉켜도

보리피리 버들피리 포르릉 포르릉 종다리의 힘찬 날개 짓,
새처럼 가벼워지는 마음과, 봄바람에 엷어지는 가슴들

이런 인연의 조건들이 어우러져 우리 몸을 봄볕에 늘어지게도 하였거니와  왠지 모를 것이 우리들을 들에 산에 떠다밀기도 하지 않았었던가

하여튼 진달래를 너무 욕심 내서 입안 가득 씹다보면
쌉싸름하고 떫떠름한 진달래의 숨었던 또 다른 꽃 맛에 미각이 혼이 나서

그래서 쉽사리 삼키지 못하고 내뱉던 기억
그저 그렇게 먹는 시늉만으로도 배를 달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겨울은 저 만치 물러나
문둥이가 진달래꽃으로 아이들을 유인 한 뒤에 간을 빼먹는다는 그 으시시한 소문도
우리를 더 이상 움츠러들게 하지 못하였던 그때

그런 봄의 한복판에선 우린 어찌 들로 나가지 않을 수 있었으랴
나물바구니 끼고 누이들은 논둑 밭이랑에 나물일랑 캐는둥 마는둥 희희낙낙 하고

우리들은 왜 아니 들판을 쏘다니지 않을 수 있었으랴
할미꽃 진달래 민들레 제비꽃 자운영 갖가지 들꽃 또한 저렇게 지천으로 또 한해 함께 할
정다운 친구들이 놀러 오는데

한편
한 동네 늘 겁만 주던 형들은 왜 하필 그 화려한 때를 틈타 유독 하필 그때쯤이면 왜
그렇게 음흉한 속내를 하고 가끔씩 소리 소문 없이 집을 나갔었는지 그리고는  
왜 책가방을 베개 삼아 하필이면 그리 멀지도 않은 골짜기에서 그렇게 멀거니 누워있었어야 했는지

이후 내가 다시 그들 또래가 되었을 땐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세상 또한 변해서였겠지
그래서 나는 그 형들의 그날 같은 봄날을 경험 할 이유도 여유도 갖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그 속내를 어림 할 뿐 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매년 봄만 되고 진달래만 피면
왠지 그렇게 흘러갔던 나의 봄도
그렇게
마치 가출한 듯 피어난 한 무더기 진달래 꽃 같이 되살아난다
잠깐 크게 한 숨 들이키는 사이 시공을 거슬러  피어나는 한 무더기 진달래 같이..........

김종기님의 진달래 사진을 보다가 옛생각이 절로 떠올라 몇자적어 올립니다.
행복하고 환한 좋은 봄맞이들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