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화분 몇개가 있는데 그 중에 관음죽이 꽃을 피웠습니다.
이 관음죽은 약 6년 전에 시누이의 사무실에 버려져 있던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때 잎사귀는 다 말라 죽고 줄기 두개가 마치 쇠꼬챙이 같이 화분에 꽂혀 있었습니다.
집에 가져와 자리를 잡아 주고는 다시 살아날까 의심을 하면서 이따금 화분에 물을 주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새로 잎이 나오고 줄기를 벋고 하면서 6년 사이에 아주 무성하고 볼품있는 나무로 잘 자라난 것입 니다. 관음죽이 이렇게 생명력을 회복하고 잘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관음죽을 보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곤 했답니다. 그래서 이 관음죽은 제가 좀 각별히 사랑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관음죽이 저를 만난지 6년 만에 꽃을 피운 것입니다. 제가 무식하여 관음죽은 잎만 보는 나무로 알았기에 꽃을 피울 거란 기대도 예상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엊그제 저녁,  관음죽이 꽃을 피웠는지도 모른 채 조용히 화분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잎새들 사이로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얼핏 보기에 그것은 앞새들 사이에 거꾸로 매달린 닭발처럼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것이 바로 관음죽의 꽃이었습니다.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실 관음죽 꽃을 처음 보는지라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생김새였습니다. 죽죽 뻗은 관음죽 잎새들의 힘찬 위용을 볼 때, 만일 꽃이 핀다면
아주 신비스럽거나 귀족의 풍모를 지닌 그런 멋진 꽃이 피어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쩍 마른 볼품없는 모습의, 그것도 닭발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라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웃고 나서 좀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관음죽에게 말했습니다.
"웃어서 미안하지만 정말 뜻밖의 겸손한 모습이군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웃고 나서 생각해보니 관음죽에게 배울 것이 또 있었습니다. 닭발 같은 꽃이든 장미 같은 꽃이든 관음죽에게는 그것이 전혀 부끄러움도 자랑거리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사람들 사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당당히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않습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일부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날 나는 위장을 해서라도, 또는 과장을 해서라도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좀더 낫게 보이려고 얼마나 애를 쓰곤 했던가. ' '어떤 때,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져서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비겁하게 숨어 버린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
생각해보니 위장을 하려고 했던 일도 부끄러워 숨어 버렸던 일도 동전의 양면처럼 모두 다 비겁함입니다.

닭발같이 보이는 관음죽 꽃 앞에서 저의 비겁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만각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럼 없이 내보일 수 있는 담담함'을 관음죽에게서 배워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