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고 난 후 마당에 나가보니
꽃잔디밭에 달팽이가 아주 많이 보이더군요.
몇마리 잡아서 저랑 자주 만나는 초등학교 4학년 또래의 아이들하고 놀았지요.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달팽이 가지고 장난을 하면서 뭐라무라 노래를 불렀던 것을 기억하는데
영 그 노랫말이 기억나지 않네요. (혹시 그런 노래 아시는 분 알켜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는 말고요.)
하여간 더듬이를 쭈볏거리며 기어가는 달팽이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달리기 시합도 시키고
매끄러운 유리창을 기어가게 하기도 하면서
글 쓸 거리를 위한 일종의 자연학습을 했는데 잼있더군요.
달팽이의 보일듯 말듯한 작은 입 속에 치설이라고 하는 오돌도돌한 이가
약 2만 개나 있다는 사실도 첨 알았고요,
더듬이가 두 쌍인 달팽이도 있고 한 쌍뿐인 달팽이도 있다는 것도 알았죠.
개구쟁이들이 혹시 달팽이에게 함부로 할까싶어
달팽이를 우리들의 놀이에 초대한 거니까 잘 대해주어야 한다고 미리 말하면서,
달팽이도 우리와 같은 '생명'이니까 함께 잘 놀다가 돌려보내자고 약속을 했지요.
일부러 던지거나 떨어뜨려서 껍질을 상하게 하면 달팽이는 치명상을 입고 한참 고생을 할거라고도 말했지요.
그런데 한 아이가 뜬금없이
"프랑스 사람들은 달팽이로 요리를 만들어 먹는대요."
하는 겁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달팽이도 생명인데 그걸 어떻게 먹냐? "
하면서 과장되게 아주 잔인하다는 표정을 잔뜩 짓고 있는 겁니다. 순진한 녀석!
"우리나라에서도 호텔 같은데에서는 달팽이 요리를 먹는다고 하던데......"
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렇게 대꾸를 했는데, 그러자 아이들의 표정에 일순 혼란스러움이 스쳐갑니다.
아마도 여지껏 '생명 사랑'을 강조하던 제 입에서 전혀 색깔이 다른 말이 나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껏 아이들의 감성에 생명 사랑의 훈김을 가득 불어 넣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달팽이 요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이상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쨌건 달팽이들은 여전히 유리창을 기어가고 있는데 우리들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맞아, 우리집에선 우렁이 된장국 끓여 먹는다."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른 한 아이가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또 한 친구의 얼굴에 반짝 섬광이 일렁이는 것 같더니
"맞아, 생명이 있다고 안 먹으면 사람은 뭘 먹고 사냐?"
내뱉듯이 아주 큰 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맞다 맞다, 우리가 먹는 건 다 '생명'이다."
한명만 빼고 모두 이렇게 동조했습니다.
"그럼 너 달팽이두 먹을거야? 그럼 먹어봐 먹어봐"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친구가 씩씩거립니다. 달팽이두 생명인데 그걸 어떻게 먹냐고 했던 친구입니다.
"야, 우리가 뭐 달팽이 먹는대?"
모두 턱도 없다는 표정을 짓고
"그럼 넌 생명 있는 건 다아 먹지마라. 넌 공기하구 물하구 흙이나 먹구 살아라."
하면서 한 친구를 계속 궁지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달팽이를 유리창에 붙여 놓은 채 한참 동안 논쟁을 벌였습니다.
결론은 아이들마다 글로 쓴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것은 '생명'이다.
채소나 과일도 생명이고 고기나 생선도 생명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남의 생명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참 미안한 일인데 안 먹고 살 수도 없다.
그러니까 조금만 먹어야 한다.
그래서 음식을 많이 만들어서 버리면 정말 더 미안한 일이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함부로 남의 생명을 쓰레기로 만들면 안된다.
그러면 죄받는다.
그리고 남의 생명을 먹었으니 착하게 살아야한다.
오늘 달팽이하고 놀면서 그걸 알았다.
깊은 감동이고...기막히게 생동감있는 글 속 풍경!
사랑스러운 충격과 아름다운 깨달음의 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아깝고 소중한 생명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