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는 시력이 아주 나빠서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느리기는 또 얼마나 느립니까?
적이 나타나도
눈 앞 2-3센티미터 앞에 오기까지는
알아 볼 수도 없을 테고
알아 본들 잽싸게 도망칠 재간도 없겠지요.
그런 달팽이가 어떻게 멸종하지 않고
지금껏 세상에 널리 퍼져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참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러는 거예요.
달팽이가 칼을 타는 재주가 있다는 거예요.
면도날을 갖다 놓으면 슬슬 기어와 칼날을 타고 넘어가는데
그 부드러운 살점에 상처를 하나도 안 내고 넘는다는 거예요.
정말?
그러나 말해준 사람의  눈은 아주 확신에 차 있어서
'그게 사실이구나 '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호기심 가득하여
당장 실험에 들어갔지요.  
찾아보니 면도날이 없어서 카터칼을 이용했지요.

자!
한 번 해봐라.
장애물 달리기를 할 때처럼 책상 위에 칼날을 세워놓고
달팽이에게 부탁(명령?)을 했지요.
그러자
달팽이들 중 두 녀석이 슬슳  기어서 카터칼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예리한 칼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는 상상만 해도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입속에는 신물이 다 고였습니다.

달팽이는 칼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아주 느리고 침착하고 고요하게 칼날의 옆면에 몸을 찰싹 붙이더니
더듬이를 움찔거리며 조금씩조금씩 몸을 움직여 칼의 날 부분으로 옮겨갔습니다.
부드러운 살덩어리를 칼에 완전히 밀착 시키고 밀듯이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칼날을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칼날 위를 넘을 때도 여전히 몸을 밀착시킨 그대로였습니다.
이윽고 다 넘어왔는데
그의 말대로 몸에는 아무런 상처가 나 있지 않았습니다.
칼에는 달팽이가 밀착하여 지나갈 때 생긴 자죽으로
어떤 미끈한 점액질의 성분이 희미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달팽이의 습성에 무식했던 저에게는
그 모습이 충격이었습니다.

날카로운 칼날을 그토록 부드러운 몸으로
어찌그리 완벽하게 밀착하여 감싸 안을 수 있을까?
마치 달팽이와 칼이
에로틱한 사랑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또 어떻게 칼에 몸이 베이지 않은 것일까요?
?????????????????????????????????????????????????????                      

나의 삶에 칼과 같은 장애물'이 나타난다면
나는 그 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달팽이처럼 의연히 그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을까?
나는 칼에 완벽하게 밀착하던 달팽이처럼
내 삶의 위험한 장애물조차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상처받게 하지 않을
부드러움이 내게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