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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미래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대부분은 행복이 자기 몫이 아님을 깨닫고 운명인양 체념하고 산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하지만 알아볼 방법도 없다.

    과연 이 세상에 운명이란 존재하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운명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이처럼 운명은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머물고 있지만 우리가 운명을 두려워하고 바꾸지 못하는 것은 거대한 산처럼 우리 앞을 짓누르고 있는 운명에 질려 그 실상을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한 마디로 말해 참외씨를 심으면 참외가 나고,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가 나는 것과 같다. 운명이란 자기 자신이 타고난 바탕에 의해 지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오이씨가 오이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도 자신의 업을 지니고 태어난 근본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불경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 7장 16∼20절)


    성자들은 이와 같이 사실 속에 있는 이치를 보고 지은 대로 결과를 받는 영원한 진리를 밝혔다. 이러한 법칙이 있기에 이 세상은 의미가 있으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과의 이치란 이것과 저것이 만나 그로부터 세상일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원리는 부처와 예수같은 성자들이 말하기 전부터 태초부터 있어온 약속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일은 지은 대로 나타나기에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주인이 될 수도, 노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과거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기에 원인이 변하지 않으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인과의 법칙에 의해 새로운 원인이 가미되면 반드시 새로운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똑같은 운명의 굴레를 도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나온 전생의 업을 벗어날 좋은 원인을 짓지 못하고 그속에 갖혀 쳇바퀴 돌 듯 계속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타고난 근본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원인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운명의 극복 가능성이 있다. 바른 진리를 만나 좋은 원인으로 맑은 영혼을 만들게 되면 반드시 좋은 운명과 밝은 후생을 기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운명의 주체로서 자유와 창조라는 신의 속성을 부여받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나타난다. 인간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거미처럼 운명의 실을 잣지만, 어떻게 짜 나갈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거미인 것이다.


    신성한 우주의 근원(조물주, 불성, 신성, 신)은 이 세상을 완전하게 지어놓고 자신을 닮은 인간에게 세상의 주인으로 역할을 하도록 맡겼다.

    따라서 신은 자신이 만든 완전한 뜻으로 세상을 심판할 뿐, 스스로 나타나 인간의 일에 간섭하거나 구원을 주는 일은 없다.

    만약 완전한 하늘이 그러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런 불완전한 신은 없을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짓는 바에 따라 완전한 결과를 받고 있으며 모든 일은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주인이라고 해서 자기가 바라는 무늬와 곱기로 베를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베를 짤 수 있다면 출세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돈 못 버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에 불만을 느끼고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주어진 습성을 스스로 벗어나기는 매우 힘이 든다. 돈 후앙에게 바람기를 버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며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을 끊으라고 해서 끊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쾌락과 재물과 출세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참된 인간의 보람과 가치를 위해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기가 없고 바른 진리를 받아들일 양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습성을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동안 운명이라는 굴레를 천형처럼 지니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실수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곳에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그러한 실수를 유발시키는 근원적인 일, 즉 업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 속에 내재되어 행동에 영향을 주는 업의 작용을 보고 사람들은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이와 같이 과거의 업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기계와 같이 고정된 동작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의지하는 데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명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바뀌는 것이다.


    그러한 이치는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빨간 물감에 흰색을 섞으면 분홍으로 변하고, 더 많이 섞으면 연분홍으로 바뀐다.

    따라서 이러한 인과법을 깨닫고 자신의 업을 지우는 좋은 원인을 쌓으면 실수를 유발하던 요소가 붉은 색에서 연분홍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거의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운명도 이러한 인과의 이치 속에 있으니 삶을 통하여 새로운 일을 자신 속에 있게 하면 그 일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작용하기 때문에 새 운명을 살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키려는 자는 주어진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새로운 원인을 주입하면 새로운 인생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자신이 호박의 자질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부족한 천성을 과감히 잘라내고 그 자리에 수박 순을 접붙이면 수박이 열리게 되는 것이 우주의 이치인 것이다.


    사람의 운명이 흐리고 나쁜 것은 그 마음속에 세상을 바로 보는 맑음이 없고 탁한 어둠을 좋아하는 업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운명을 지니고자 하는 이는 바른 진리와 밝은 인연을 가까이 해야 한다. 진실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업은 영원히 자기 속에 남아 반복된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고정된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인연을 만나기는커녕 말세의 어둠에 휩쓸려 나쁜 인연을 계속 지으면 그의 운명은 갈수록 나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은 완전한 인과법 속에 존재한다. 좋은 원인은 좋은 자신과 좋은 운명을 만들고 나쁜 원인은 나쁜 나와 나쁜 운명을 낳는다.

    따라서 스스로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고정된 운명에 머물게 된다.

    이 이치는 너무나 명백하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이름을 떨치려면 자기자신을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하고, 세상을 위해 보람있게 살려면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길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악과 어둠 속에 있으며 사람들은 욕망과 집착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의 허무와 불행에 몸서리치면서도 자신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인간이 왜 바른 삶을 살아야 하며, 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우주의 실상과 흐름에 따라 살지 않으면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물질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과거 성자들이 보신 완전한 우주의 실상과 이치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진리는 세상을 이치대로 이루어지게 하고 인간의 마음에 지혜와 평안을 주어 그의 운명을 밝게 만든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은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한번 지어진 것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는 법은 없으며 모든 원인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결과를 가진다.

    이러한 인과법을 이해한다면 우리들은 매사에 유의하여 좋은 뜻은 조금이라도 많이 짓고 나쁜 뜻은 가능한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법칙 앞에는 어떠한 사술도 용납되지 않으며 점과 사주, 성명학이나 기도, 심지어 신의 축복 또한 통하지 않는다. 신도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짓지 못하며 사실 속에 존재하는 인과의 이치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사실들과 이치에 대해 바로 앎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원하는 운명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속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호박같은 속성을 끊기를 거부하며, 그 문제를 해결할 용기와 대책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에 숨겨진 너무나 쉬우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비밀인 것이다.



    출처『어두운 세상에 길은 있는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