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날씨가 수상하다

[주간한국 2005-04-21 17:23]    



한반도 날씨가 수상하다.

연강수량 1,300mm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870mm의 비가 단 하루 만에 쏟아지고(2002년 8월 태풍 ‘루사’), 한겨울에도 눈 구경을 거의 할 수 없던 부산에는 하루 아침에 37cm의 눈이 꽃 피는 춘삼월에 뿌려졌다(2005년). 제주도에서는 초속 60m(시속 216km)의 바람이 한라산을 때렸고(2003년 9월), 아직 한겨울이라고 할 만한 2월의 서울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반팔 차림의 행인들이 길거리를 채웠다(2004년 2월ㆍ18.7도). 차례로 꽃망울을 터뜨리던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라일락도 올 봄에는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모두 현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처음 있는 일들이다.


지금의 기후 변화는 대멸종기와 유사?


기상관측 100년을 맞아 지난해 기상청 기상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과거 100년 동안 한반도 연평균 기온 상승률은 1.5도였다. 1년 뒤인 지난 3월, 향후 100년 동안 한반도는 4~6도의 기온 상승을 보여 부산에서는 겨울이 없어질 수 있다는 오재호 부경대 교수의 연구보고가 있었다. 4도는 지금의 서울과 서귀포시의 연평균 기온 차이에 해당한다.


잠시 학창 시절 지구과학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상기해 보자.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 지질 시대가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변화에는 예외 없이 많은 생물이 멸종됐다는 ‘대멸종기’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멸종기에 보인 지구 기온의 변화폭이 고작 5도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생물종의 멸종이 시작되었던 시기의 기온 변화폭은 그 절반 수준인 2~3도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기상학자들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2.0~6.4도 정도의 온난화가 진행되면 생태계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2.0~6.4도’의 변화 중 한반도에서는 지난 100년간 이미 1.5도의 기온 상승을 기록한 상태다. 한반도의 평균 기온만 놓고 본다면, 지금의 기후변화 양태는 대멸종기와 유사한 셈이다.


현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한반도 기후는 어떻게 변화 했을까. 눈에 띄게 늘어난 이상기후 현상들의 원인을 지난 100년간의 변화로 되짚어 보자. 우선 한반도에서 관찰되는 기후변화 주요 내용으로는 기온 상승과 강수량 증가 및 강우 패턴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계절과 식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1904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기온자료에 의하면 연평균기온이 1.5도 상승했다. 온난화 추세가 전지구적인 것이긴 하지만 한반도의 상승률은 전지구의 평균치(0.6도)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때문에 계절의 변화도 급격해 ‘봄ㆍ가을이 실종됐다’고 체감하는 일부 지역 사람들의 얘기도 무리는 아니다.


온난화로 봄ㆍ여름ㆍ가을 늘고 겨울 줄고


1920년대 서울의 경우 봄이 3월 23일 시작해 6월 9일까지이던 것이 1990년대에는 3월 5일 시작해서 5월 31일 끝나 9일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여름은 6월10일~9월9일→6월1일~9월13일(13일 증가), 가을은 9월10일~11월9일→9월14일~11월18일(4일 감소) 그리고 겨울은 11월10일~3월24일→11월19일~3월6일로 27일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보다 위도가 낮은 부산의 같은 기간 계절별 일수는 봄이 3월2일~6월16일→2월7일~6월9일(16일 증가), 여름이 6월17일~9월18일→6월17일~9월25일(14일 증가), 가을이 9월19일~12월9일→9월26일~1월4일로 19일 증가했다. 특히 1920년대에 12월10일 시작해서 3월 2일까지 지속되던 겨울의 경우는 1월 5일 시작해 2월 7일 끝나 무려 49일이 감소했다. 일년 열 두 달을 4등분하는 사계절이 무색할 지경이다. 온난화 속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화 하고 있는 점을 상기하면 ‘100년 뒤 부산의 겨울이 없어진다’는 연구 결과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부산의 겨울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계절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강수량과 일평균 기온 등을 비교하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일평균 기온이 5도를 넘어서는 경우 봄이 시작하는 것으로, 20도가 넘으면 여름으로 본다. 다시 20도를 밑돌면 가을이 온 것으로, 5도 이하로 내려가면 겨울로 간주한다. 이 5도는 식물이 세포분열을 시작하는 온도로 알려져 있고, 북한은 남한보다 5도씩 낮은 ‘0도/15도’를 계절 변화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기온의 상승은 해수온도의 상승을 불러 태풍의 위력을 강화하는 데 한 몫을 한다. 전에는 한반도 주변의 차가운 해수가 북진하는 태풍의 세력을 약화시켰지만 이제는 데워진 한반도 주변의 해수가 세력을 유지하게 하거나 오히려 수증기를 공급해 세력을 더 강화시키고 있고, 그 때문에 최근 들어 태풍으로 인한 대형재해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고 기상연구소 권원태 실장은 지적한다.


강수량은 늘고 강수일수는 줄어 집중 호우, 재해 급증


강우 패턴의 변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난 1세기 동안 강수량은 그 변동폭이 무척 커서 기온처럼 추세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대체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강수량은 소폭 증가한데 반해 강수 일수는 현저히 줄어 강우 패턴이 집중호우로 변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연 강수량의 절반 가량을 소화하던 장마 기간(6월 중순 ~ 7월 중순)에도 별다른 강수량을 보이지 않다가 8월, 9월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강우 패턴이 대표적이다.


‘찔끔찔끔’, ‘자주’ 내리는 강우가 가장 이상적인 패턴임을 이해한다면 이 같이 변화한 강우 패턴이 가뭄, 홍수 등의 자연 재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쉽게 수긍이 간다. 하루 강수량이 80mm 이상인 호우 일수의 연평균 발생빈도가 1954~1963년에는 년 1.6일이다가 1994~2003년에는 2.3일로 늘었고, 2004년에는 이보다 더 빈번해 호우일수도 증가추세에 있다.




태풍이나 악천후를 유발하는 저기압과 전선이 자주 통과하는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임을 감안하면, 결국 호우 일수의 증가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1998년 이후 자연재해 발생횟수나 규모가 커지고 있다.(표 참고) 이 피해 중 96.4%는 태풍과 호우, 폭풍에 의한 것이다.


[인터뷰]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실장


"온실가스 감축이 가장 중요"


“기후는 과거에도 변화했고, 미래에도 변화할 것입니다. 이게 바로 기후의 특성이죠.” 요즘과 같은 기후변화가 이상할 것 없다는 뜻일까. 곧바로 부연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변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미래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래야만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기후의 변화 속도를 좀 줄일 수 있죠. 이와 함께 이미 배출된 가스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온난화, 그 때문에 변화하고 있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해마다 쏟아지는 갖가지 ‘100년만의 기록’들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노력들을 묻자 기상연구소 권원태(50) 기후연구실장이 내놓은 답이다. 그의 말은 지구 온난화는 이미 깊숙이 진행됐기 때문에 온난화 예방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자연의 재앙에도 대비하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논의 중인 기후변화협약 – 교토의정서로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온실 가스 감축 노력은 향후 50~70년 이후에나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온난화의 영향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죠.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명백한 현상입니다. 지역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응 대책도 수립해야 합니다.”


권 실장은 “많은 신문과 방송들이 ‘봄ㆍ가을이 없어졌다’, ‘100년 뒤 겨울이 없어진다’ 등의 자극적인 얘기는 잘 하지만, 이 현상들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거나 대응책에 대해서 논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며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때문에 온실 감축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당국이 주도해 기후변화 관련 기술에서는 선진국 대열에 서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권 실장은 “최첨단 IT관련 기술이 고부가가치 기술로 인정 받고 있는 지금이지만, 머지않아 기후변화 관련 기술들이 그 못지않은 지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며 “환경과 그에 관한 기술 문제를 소홀히 한 국가는 경제적으로 고공 성장을 하더라도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바로 21세기”라고 강조했다.







** 도움말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