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영어권에서는 경험이 없고 어느 경우에나 익숙 하지못한 상태의 초보 자들을
햇 병아리 즉(생닭)  후레쉬 치킨(Fresh chicken) 이라 부르기도한다,,
더러는 스프링 치킨(Spring chicken) 햇병아리, 영계, 풋내기, 철부지등도 있고^^

 

그 누구도 그 아무도 자신이 경험하여 넘어서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두려움이 앞 선다,,,
산 위에 올라가  낭떠러지에서 밑을 바라 보노라면 그 높이의 여하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판이하다,,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가다가 난기류를 만나면 그 정도의 여하에 따라 어떤 경우는 단련
되었다는 승무원들을 비롯하여 기내 모두의 승객들은 물론 머리털이  빳빳하게 일어서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란 대단한 존재?도 예외없이오금이 저리는 경험을 하게된다,,,


거기에는 돈 많은 부자도, 소용없고 벼슬아치도,머리 좋은 인재도, 온갖 기술을 자랑하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나는 그 지경에서 오줌을 싸고 후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보았다,, 남 녀
구분이 없다,,오히려 어린 아이들은 마치 공원에서 목마를타고 놀듯 신이난다,,

 

그 사이에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나이가 많을 수록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고 어린 아이로

연령이 내려갈 수록 그리 위 아래로 몇 미터씩 순간 떨어졌다 오르고를 반복해도 마치

요람을 타는 듯 조용하다,,, 나이가 들 수록 이는 훨씬 더 한다,, 어찌된 일일까,,, 

 

지난 날 나는 이 땅 이 지구위를 몇 바퀴를 돌아 수 많은 시간들을 공중에서 그리 널을 뛰듯

온갖 군데를 넘나들며 보여졌고 알아졌고 느꼈던 것들을  여기에 쓰고있는 것이기에 그많큼

더불어 경험을 통한 분들에게는 오직 체험한 자외에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기실 말이나

글은 기실 아무 의미도 없을것이다,,

 

그 것은 일반적으로 쉽게 아무나 접하는 상황이 아닌 경우라 모두가 해당될만한 가히

경험의 극치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험해 보지않은 모두에게는 이 또한 그냥 말로만

전해가는 그런가보다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경험 또한 그렇게 오줌을 지리며 버티는 가운데 오랜 경험으로 이어지면 이
비행기는 그래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단 한 가지의 믿음을 굳건히?
갖게된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인간들의 생각에는 지구가 동그랗지 않아 배가

멀리 나가면 수직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것을 누구나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상상해보라,,,

 

나는 안다,, 왜 그리도 이 한 생애에서 이 땅위 모태인 어머니의 배 위를 쇠 똥구리처럼

쉬임없이 그 먼곳들을 글러다니며 그 많은 곳들에 사랑과 평안인 기운의 흔적을 남기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는지를,,, 

 

어머니 지구인 이 땅의 깊이 패인 젖 무덤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고

만물의 통곡과 탄식을 보았다,,,오직 하늘의 간섭으로많이 해원되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어린 아이처럼 손꼽아 기다리는 그렇게도 불확실성한 의식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져 온 얼마 남지않은 유일한 맑은 의식들의 처연한 모습들도 보았다,,,

 

근원인 아버지는 온 우주를 살피고 아들은 그 아버지의 눈을 빌어 온 세상을 살피고 있는

것이리라,, 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멈추지않는 영원으로부터 있어온 그 평안과 사랑의 빛이

매우 가까이 이르렀음을 보이심 이기도하고,,

 

돌아가서,,,자동차 운전을 배워 도로를 질주하기 전 까지 온갖 두려움이 어깨를 짖 누른다,,,
청룡 열차를 타고, 그네를 타며, 풍랑을 만난 배를 탔을 때를 생각해보자,,,
서로 다른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느 순간 타 국인과 만났을 때 저 사람이 나한테

무엇을 물어올까,, 나는 무어라고 대답해야하나,,,,,,

동종의 인간들임에도 말이 안통해 답답함을 어떻게 느껴보았는가,,,

 

그 무엇도 마찬가지다,,, 배웠다고 으쓱거리는 교만한 자들에게 묻는말이 아니다,,

언어란 그리 만만한것이 아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문장을 쓰는 종자들끼리도

이해가 안돼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수 많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고유 언어의 관문을 통과하기도 함들어,, 예를 들어

방송의 장학퀴즈나 우리말 겨루기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거의가  다 떨어지고 그나마

남은 인재?도 깔딱하면 마지막 두서너 문제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동강 오리 알이 되는

판국에,,,, 

 

그냥 오래 되어 익숙해 가면서 동화 되어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뜻이 전달되므로

대화가 되는 것이지,, 전문적으로 배워 한 곳에만 몰구하여 더불어 살기 전에는

그리 쉬운것은 아닌것이 언어의 장벽이다,, 

나중에 이에대하여 쓰기로하고,,,

 

어쨌던,,,그렇게 인간이 마음 안으로 받아들여진 두려움이란 한 번 들어와 인식화되면 나이가
들면서 더욱 불변화 되고 바로 그 두려움이란 자체는 불확실성한 것이기에 원래 근원'
으로부터 분화된 확실한 인간이 받아 들이려하니 마음과 몸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혼돈 상태로 휘말려 버리는 것이다,,

 

님은 마음 안에 어떤 두려움이 잠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그아무도 그 어느 우주만물 그 어떤 같은 성정의 인간들의 굄에 넘어가 종속되어 일생을
종노릇 하지 않을것입니다,,


두려움이 있기에 남을 꼬여 조직을 만들고 종교가 생겨났으며 결속을 외치고 하나되자
외친다,,

그래서 혹자는 "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 했다,,,


그러나 실상은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전쟁터에서 분산되지 않음이 그렇고 전염병이

돌 때 몰려있음이 그렇고 만원버스를 타고 빙판 길을 달림이 그렇다,,,깊이 숙고할 아니

일생을 두고 곺 앂어 볼 일이다,,,


자연을 따라 순리대로 나아가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다,,,


어느것이던 그것이 말이든지 글이든 썼던 보았던 들었던 강제가 따라다니는 곳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붙어있어야 두려움이 사라지는것으로 착각하고 집단을

형성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집단이란 서로 일을하기 위한 수단이나 배움을 위한 다 수의 모임을

말하는것은 아니다,,,

 

이 두려움이란 불확실성한 의식이 인간에게 첨착되면 인간은 이를 털어내기 위한 자구
책으로주변의 상황을 의식하고 있을 때,,또 다른 불확실성한 의식인 한 종교 인이 동변
상련의 실상을 들먹이며 더욱 불확실성한 의식으로 다가와 아에 통째로 의식이 상승해

야 할 생명을 냉동고에 넣고 얼려버린다,,,

 

두려움은 곳 자신에게 불확실성한 의식이 들어와 자신의 것으로 의식화 된것을 말한다,,
예수는 바로 이 불확실성한 의식에서 깨어나기를 자신이 곧 님이되어 더 나아가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아니 원래부터 헤어질 수 없는 근원 으로부터의 하나임을 몸으로
실천하여 이 세상에 드러내었다,,

 

인간 외에 다른 종류의 동물들은 천리 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또 다른 동물들은 천리밖의 소리를 듣는 청각을 지니고 있다,,,.

 

동물들의 의식은 죄 의식이란 환영의 가면이 없다,,,,, 즉 장보러 가는데 개 따라간다고
자신 스스로가 타에 물들어 천리 안을 잃지는않는다,,

 

오로지 인간들의 불확실성한 죽음이란 두려움,, 즉 무식하게 전이된 행위나 전달되는

탁한 기운의 여파로 빼앗길까하는 두려움이 의식자체가 상황에 순간 드러나지만  그

의식 자체는 인간들 보다도 빛으로 말하면 훨씬 맑고 하얗다,,,

 

동물이나 식물 모든 기식하는 의식들은 인간으로부터 사육되거나 인간들 사이에 가까울
수록 죽음이란 두려움을 인간과 아주 근접하게 느끼고 그렇게 인간들의 눈에도 보여
지지만 순전한 의식, 즉 인간들과 동 떨어지고 환경이 인간들과 다른 쪽의 고래들이나
펭귄 더 많은 의식들은 죽음이란 의식을 그렇게 두렵게 느끼지는 않는다,,

이는 인간들의 죽음이란 두려움의 의식이 다른 짐승들이나 동물들에게 전이되어 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일까,,, 왜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란 영묘?한 존재는 한 치 앞을 못 내다보고 못 들으며,,,,
설령 듣고 보고 안다는 것 자체도 고작 무엇인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더 가까이 인간들끼리의 상황을 살펴보면,,,

 

처음에 어떤 원인이나 이유로 서로가 만난다 치자,, 만나는 순간 (자신의 의식 수준에 따라)
무언가 자신의 것을 다 내놓아도 될것같은 어떤 느낌과 예감이 들어 잘 나가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보여지고 듣고 말하는 가운데 무언가 자신
이 예상하고 느끼고 있는그 어떤 기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상대를 깔보기
시작하며 그 어떤 무의미한 주도권?을 잡아가려한다,,

 

그리된 순간 부터는 이미 자신이 한 치 앞에 둘러친 육중한 (탐욕과 상대 차별적인 담의
두께 정도에따라 상대를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 하는 짓이고 일생
하는일이다,, 그렇다고 어떤 개안된 의식이 이를 두고 무슨 말을 하고 한들 바보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 천리 안인 짐승보다 낫고 너 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라가 답이다,,


어찌할 것인가 하늘도 어찌해 볼 수없는 깨어나기에는 요원한 의식이다,,

죽음이란 두려움의 의식,,, 죽은자는 죽은자들로 장사하게 둬라,,,
묘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의 만나는 자리에서의 대화에서는 이런 일 면들을 본다, 당신은 올해 몇이요,,
나이를 묻는것일게다,, 이러이러 하오 하면,, 아니 그렇게 들어보이지 않는데? 십 년은

젊어 보인다,, 그 말을 듣는순간 상대방의 입에서는 그놈 참,, 기특하긴^^

 

젊은 아줌마 한테 아가씨 하면 돌아서서는 입이 째진다,,, 왼일일까,, 그렇다고 아줌씨가

아기씨가될리 만무하다,,

 그러나 모르고 노 처녀한테 아줌마했다가는 순간 눈초리가 완연하게 V자로 달라진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원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있는 실 예라보면된다,, 늙기 싫고, 죽기싫고,,,,,


그리 역으로 묻고 그리 역으로 대답해야 마음이 들뜨는?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글이나
통해서야 드러나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들여다보고 알며 무엇이 어떻게 인간 안에
불확실성하게 드러나 있는 의식의 새계를 깨닫고 이해 하겠는가,,,

 

좋다, 싫다, 그렇다, 아니다, 돼, 안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상대 차별적인 의식으로

인간이 정도 이상을 넘어서 있게되면 나아간만큼 의식은 도태의 선을 넘나든다,,,


즉 우주의 전일성을 회복한 의식은 죽음이란 해당되지 않는다,,, 해서 죽은자들이
장사하려 달려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녕 죽은 자들은 장사를 지내야한다,, 누가?? 역시 죽은 의식들이..

예수는 산 의식 이었기에 죽음이란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은 자 를 장사 지내는 죽은 자 들은 바로 종교의 살았다고하는 죽은 자들인 교주들이다,,,
죽은자를  후에 예수가 살려낼 것이라 말 하는것은 자신들은 정작 예수의 말을 듣고도
그 의식이 죽은 자 들이기에 죽은자들의 말이 확신이 될 수는 없다,,,

 

죽은 자 들은 의식이 와해 되었는데 죽었다가 또 때가되면 살아나서 또 어디를 간다고
하는 것은 전혀 앞 뒤가 맞지않는 말 그대로 죽은자 들의 깨어나지 못하는 죽은 소리일
뿐이다,,

 

해서 예수는 죽은 몇몇을 들어 살릴 때 죽은자는 살려놔도 언젠가는 또 죽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일을 했다,, 그것이 전설이었던 수 천년전의 실제였던 그것이 큰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말이나 글이 전해오고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에 역 부족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의식이 개안되기 전에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단 한가지 먹고 입고 싸는 것 외에는 열린것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정작 두려움을 조장하고 이를 미끼로 사욕의 거미줄을 치고 장사하는 부동산 업자들이
누구일까,,


보라,,,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리함에도 수 천년이 지나온 이 날 이 때까지도 그 말 한 마디를 바로듣고 바로 이해
하지 못하고 허구 한 날 엎드려 무릎이 마르고 닳도록 부비며 일 생을 허우적거린다,,,


하늘이 인간을 내었기에 하늘의 말을 인간에게 전하려면 개안된 인간의 입을 통하여
전달된다,,

 

이를 잘 이해하여 받아들이면 안보이는 신을 빙자하여 돈 짚고 헤엄치는 종교란 이
땅 위에서 발 붙일 곳이 없어진다,,

 

아무 생산적이지도, 아무 의식의 변화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않는 삶으로 한 생을
인식의 확장이 아닌 같은 동종의 인간이 같은 레벨의 인간에게 매달려 종 노릇한다,,
이러한 인간들의 의식 상태가 어림잡아 최소 수 천년 동안 그리도 무심하게 흘러왔다,,,

 

이런 말이 무슨 뜻인지를 천 만 분의 일이라도 깨닫는 의식이라면 인간이란 존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가지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그 자리에서서 정작 멀리
바라 보여야하나 보여지지 않는 한 치 앞을 향하여 오직 자신이란 의식을 일깨우기위한
하늘의 뜻을 구하는 것밖에는 그 아무것도 없다,,,,
 
자신이 죽어있는 자 였음을 자각할 때 인간은 두려움에서 환골탈태한다,,,,
이는 곧 산 자는 죽을 수 없는것이기에 이 전에 죽어 있었던 것으로 의식하고 있었음을
깨닳았을 때 하늘 문은 열린다,,
 
그 두려움에서(두려움은 곧 죽음이란 의식)해방되면 자신은 곧 영원히 죽지않는 의식
이었음을 그제야 비로소 자각한다,, 바로 살아서 이를 믿는자는 그 믿음 그대로 자신의
願인 영원한 사랑과 평안을 인식한다,,,

 

예수는 人命이다,,, 예수라는 인명이 천명의 의식으로 보였을 때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라
불렀다, 그는 곧  우리 모두는 하나도 잃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임을,,,,,,,즉 산자는 죽지
않는다는 부활로 드러내었다,,,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고,,, 이런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시에도 오늘
날과 다르지 않게 도태되어 있는 의식들이 여전히 바글 거렸을것이고 성경이란 경도
어떻게 누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변개시켰는지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실로 그러한 것보다는 그래도 최소 하늘의 인간에 대한 자신의 모습이  면면히 흐르도록
최소의 좁고 험한 길 그러나 해지기 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한  人命을 통하여 예비
되어 왔다는 것을 자각하면 모든것은 자신을위해 하늘이 수 천년이란 세월을 보너스로
내어주며 다 생을 통해 인식하도록 했다는데 역점이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은 바로 님 하나의 죽어있던 의식을 영원한 의식으로 즉 산자의 의식
으로 돌려놓기 위한 그렇게 장구한 역사가 있어 왔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님 곧 나라는
의식 하나를 위해,,,, (나가 없으면 그 아무것도 없고 우주 삼라만상이 없으면 나 또한 없는
것을 잘 이해하면 우주의 섭리를 근원 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두를 이해하게된다,,,

 

자신이란 존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라,, 무엇인가 그것이 무슨 일이었든지 간에 두려움이란
외피가 자신을 촘촘히 마치 누에의 겉이 하얀 각막으로 둘러싸여 있듯이 자신을 외워싸고
있지 않는지를,,,

 

그리고는 그렇게 둘러 싸고있는 그 외피와 자신이란 내피 사이의 간격이 곧 한 치인것으로
보면, 자신이 지금 멀리 보인다고 하는것이 어느 많큼 인지를 가름해보자,,,
 
바로 그 외피의 자리 곧 한 치의 거리,, 즉 손가락 한 마디의 거리에 있는것이 자신이 이 세상
에서 체험의삶을 사는동안 거침없이 받아들여 자신과 다른 세상? 간 자신 스스로 가로막은
두려움이란 만리장성인것이다,,

 

참 인간이란 존재의 내면에는 이러한 불확실성한 의식의 벽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설명하여 빛이라고하는 것은 어두움이 그 빛으로 인하여 물러간 상태 즉 앎의
자리이며 영원한 생명을 인식하고 그 자리가 곧 근원의 자리 사랑과 평안의 자리이기
때문이고 동,서,남,북,이 모두가 하나되어 탁 트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이라는 의식 사랑과 평안을 인식하는 영원한 생명이 곧 자신임음 망각하고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 즉 자신은 외톨이 즉 언젠가는 죽는다고하는 그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윗 글에서 말했듯이 누에의 겉을 하얀 각막이 덮듯 자신 스스로가 그러한  두려움의 벽을
한 치 의 위치에 쌓고 덧 칠 하기를 반복하고 있는것이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의지하지 않고, 회중화 되지않고, 더불어 함께 달라붙어 있지않으면

죽을것 같은 그 불확실성한 의심의 벽에 두려움을 더욱 덧칠 하는 것이 곧 인간이란

존재이다,,,

 

발가벗고 사는 동일한 존재들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것이야 기온의
차를 따라 필요해서 입는것이야 그렇다치고,,,

 

왜 옷이라는 것이 값으로 매겨저 상술이란 것으로 심난을 스스로 겪으며 좋은 옷이니 비싼
옷이니 누가 누구에게 그리하는 것이 한 존재로 드러나 짧은 체험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그러한 불확실성한 것들로 인하여 온갖 한 치 간의 그 두려움이란 벽으로 인하여,,,,,,,,,,,,,,


하늘과 땅 만물과 더불어 전체를 인식 해야하는 의식이 갇혀 빛을 보지 못한 채 안에서 썩어
가고 있으니 그렇게 불 확실성한 인식의 벽으로 정녕 자신을 둘러 싸게 하고있으니 하늘인들
어찌 구제할 것인가,,   

  

페 일언하고 어떻게 같은 성정의 나와 똑 같은 또 하나의 나 인 인간 으로써의 의식 안에
좌정 하고있는 하늘의 의식이 똑 같이 평행 선을 달릴 수 없음이 두려움의 원인임을
알았고  이를 알고 보여지게 하는 天, 地, 人, 의 조화에 무한 감사와 또한 그 안의 평안과
온 우주 안에 시공을 초월하여 보여지는 무한한 사랑에 전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