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공휴일이었어요.
장을 보러 가까운 재래 시장에 갔습니다.
모처럼 식구들이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터라 맛있는 음식도 장만해야하겠고 과일도 좀 필요했지요.
날도 더운데 수박을 하나 사가지고 가야하겠구나 생각하며 막 시장 입구로 발을 들여놓을 때였습니다.
   좀 이상한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장 입구에는 싱싱한 과일을 잔뜩 쌓아 놓은 엇비슷한 규모의 과일 가게 두 곳이 마주보며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왼편 가게에는 손님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고, 오른편 가게는 손님 한명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박을 사가려고 했던 터라 두 과일 가게를 기웃거리며 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수박은 무거우니까 장을 다 본 다음에 살 예정이었죠. 야채랑, 생선이랑, 맛있게 생긴 호박 인절미도 좀 산 다음에 과일 가게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저만치 과일 가게가 보였습니다.  아까와 조금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바글거리던 과일 가게는 여전히 손님이 바글거렸고, 파리를 날리던 가게는 여전히 파리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손님 많은 가게 아저씨는 흥이 나서 "달고 맛있는 꿀수박 사세요"하며 연방 외쳐댑니다.  어디서 수박을 살까 ? 저는 두 가게를 번갈아 보며 아주 잠깐 망설였습니다.
  "수박 단가요?"
저는 왜인지 파리 날리는 가게로 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마도  마음이 급했던 터라 한적한 가게가 좋았던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참 모를 것은 사람 많은 쪽의 과일이 더 맛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불안한 제 마음에 그 과일가게 아저씨가 '수박이 틀림없이 달다'는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놈은 달고 어떤 놈은 안 달아요"
  뜻밖의  퉁명한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좀 놀라고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과일가게 아저씨가 앞 가게에 손님을 다 뺐기는 것이 속상해서 그렇겠구나 얼핏 그렇게 생각하며
  "다 같은 수박인데 왜 저 집은 손님이 많은데 여긴 이렇게 조용할까요."
   하고 아주 어리석고도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당황한 가운데 얼떨결에 나온 말이지요.
  " 손님이 많건 적건 뭔 상관이슈? 살테면 사고 말테면 썩 꺼져버리슈.  재수읎게스리......."
   수박장수가 칼을 좌판에 대고 쓱쓱 문지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걸 보고 결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아휴 장사 잘해보슈. 하구 싹 몸을 돌려 앞집으로 갈까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나쁜사람같으니라구, 저런 식으로 하니 손님이 안 들 수 밖에 ' 속에서 여러가지 말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제가 어떤 태도를 선택해야할지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들이 제 속에서 소용돌이를 쳤습니다.
   " 아휴, 죄송해요. 그런데 아저씨가 전문가니까 수박하나  잘 골라주세요. 아주 단 것으로요."
  현기증같은 것을 느끼며 겨우 이렇게 말해서 어려운 상황은 끝이 났습니다. 속에서 자존심 파삭 구겨지는 소리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수박에 칼집을 넣어 익었는지 속을 한번 보자는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퉁거리며 수박을 건네주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습니다.
  끄르륵하고 트림이 올라왔습니다. 화가 잔뜩 난 그 아저씨의 눈이 차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르릉~ 차를 몰아 시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내가 왜 그 파리 날리는 가게를 선택했을까. 좀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왕이면 맛있을 것 같은 수박을 기분 좋게 사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만일 이 수박이 맛이 없으면 어쩌지? 그 과일가게 아저씨가 더 미워질텐데....,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다 왔습니다.
  수박을 쪼개었습니다.  빨갛게 익은 속이 짝 소리를 내며 드러났습니다. 단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