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연스럽게 노래의 날개를 타고 오는 것처럼 하세요♡ - 대지의 천사 -

이제는 우리가 니체를 죽이자.
                                                                  
신은 죽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에 걸리는 독특한 지혜의 소유자 니체의 막 말이다.
아니 막 말이라기보다는 사상이요, 숨결이요, 생명이며 사랑이다.

1876년 여름 바이로이트에서 신을 죽인 그가 죽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생애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란, 매번의 탄생과 죽음이란 행위의 보편적 범주였을 뿐 그 외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거다.
했기에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호흡만 멈춘 채 오늘도 우리들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나.
차라리 동정을 받아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닐까.
왜냐면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자기의 삶속에서 주인노릇 한번 제대로 못하는데 비해 그는 그의 삶 전체를 ‘자기의 주인’으로 살았고 지금도 모두의 삶속에서 주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삶이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숭고한 예술이다.

“예술이야말로 삶의 최고 과제이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행위이다.”
자기 삶의 중심에서 주인노릇 잘했다는 그의 주장엔 세기전의 동양사상이 물씬거린다. 지금도 인, 의, 예, 지를 떠 올리게 하는 거구의 사나이 공자와 그의 사상을 대 물림한 맹자 의 정신 말이다.
그 뿐이 아니다.
플라톤이 주창한 관념론의 주체였던 4주덕(지혜, 용기, 절제, 정의)에 반기를 들고 스승과의 학연을 끊어야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도 녹아 있다.

그가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에서 스스로 삶의 위안을 발견하고는 언제나 언어나 몸짓보다 깊은 곳에 자리한 ‘음악예술’에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지평을 열었음은 충분히 그것을 짐작케 하지 않는가.
태초에 음악이 생겨나게 된 기원을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절규라 했다.
그리고 예술이란 감명을 전제하는 몸부림이라 했고.
그러 하기에 ‘감명’이란 예술가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무한히 미세한 그것들을 발견할 때 또는 그 범위 안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리라.
그리스의 철학가들은 위조된 예술품이 생기는 세 가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예술가의 직업화
둘째, 예술비평의 조장
셋째, 학교 교육
“진정한 예술품은 사랑받는 아내와 같아서 아무런 꾸밈이 필요 없으나 위조된 예술이란 매춘부처럼 언제든지 화장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예술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위의 세 가지 이유에 누구든 수긍 할 것이다.  
예술가의 혼으로 창조된 ‘작품’을 돈으로서 거래한다니 이게 될 말인가.
그리고 비평이란 어느 잣대의 기준을 표준으로 한다는 건가.
모두가 어불성설이다.
또, 학교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예술과 닮은 것을 제작해 내는 기술일 뿐이지 결코 예술 자체 일수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이런 교육의 본질을 왜곡한 교육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유사 예술에 길들게 함으로서 진정한 예술을 알지 못하도록 전이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일컫는 예술이란 ‘지식’의 영역에 있는 그 무엇을 ‘감정’의 영역으로 자리바꿈 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의 옳은 이해를 도울 교육의 부재가 예술을 선반위로 쫓아버린 것이다.

니체가 바그너와 이별을 고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둘만의 헤어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그너의 이름을 빌려 전개된 니체란  인간의 사유 전체와의 결별이었기 때문이다.
지식과 감정의 만남과 헤어짐.
사람들은 확고한 토대도 없는 이상들을 너무도 쉽게 믿어 버리고, 또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은 어찌하여 그다지도 확고한지 알 수가 없다.
니체는 결국 인간적인 가치 모두에게 싸늘해져 버린다.
이유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든 것들에 대해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스스로 획득하게 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에 걸리는 독특한 삶의 지혜’ 덕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 ‘이 사람을 보라’에서 “전형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병을 풍요로운 삶을 위한 적극적 자극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썼지 않았던가.

그런 질병과의 싸움에서 그는 카오스를 만드는 것 같았으나 결국 카오스란 길의 갈라짐이 아니라 길의 과잉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지금의 니체가 과거에 니체일 수 있었던 수많은 니체들과, 그리고 앞으로 니체일 수 있는 수많은 니체들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을 죽이고 그 자리에 짜라투스트라를 세웠다.
페르시아의 짜라투스트라가 도덕적 세계의 탄생을 의미한다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도덕적 세계의 몰락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가 짜라투스트라를 썼을 때 니체는 아무도 그걸 읽을 수 있을 거라거나 또는 읽어주길 소망 하지도 않았다 한다.
그는 그의 책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모든 걸 봉한 채 만인 앞에 그냥 내 던져 놓았던 것이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이 본의 아니게 태어난 버린둥이 처럼.
그의 배짱에 걸 맞는 섬세한 감수성과 용기,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수용할 줄 아는 속 너른 긍정정신을 읽어 낼 부드러운 손가락과 힘센 주먹이 그 것을 찾아들고 읽기를 요원했지만 그런 자는 드물었다.

프로이트와 융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그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니체가 정신세계를 담아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던 ‘사건들이 새겨 진다’ 고 생각한 [육체]까지 주목하지는 못했을 거다.
육체란 정신을 담고 있는 몸.
그 몸이 사는 집으로서의 ‘몸집’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인지 니체는 책을 통해서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보다는 문밖에서 사유하는 무리들을 좋아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구의 생각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만드는 것이며 누구의 삶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생각하면 니체는 복이 많은 남자다.
대부분의 철학가가 독신으로 살았거나 가족이나 주위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데 비해 언제나 니체의 곁에서 어머니처럼 따뜻한 손 짚음을 이마에 해 줬다는 [말비다 폰 마이젠부르크]가 있었으니.
그녀도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한 여성 해방론자로서 니체와 수많은 편지를 교환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이 청마가 이영도를 그리던 그런 연서 같았던지는 나도 모르겠다.

“실천! 그것이 바로 그의 삶이다”
인류에게 전하는 위대한 메시지 “신은 죽었다”를 이해시키기 위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며 신을 찾던 그의 광기어린 삶.
그것은 모름지기 실천이었다.
결국 ‘신의 죽음’을 이해시키지 못한 채 “나는 너무 일찍 왔다”고 부르짖으며 밤하늘의 별빛이 수천 년 전의 것이듯 신의 죽음역시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고 고개를 떨구던 사나이.
이 사나이의 눈물을 짐작컨대 신이 있었기 때문에 신앙이 생긴 게 아니라 신앙 때문에 신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종교적 입장에서 특히 기독교적인 입장에서의 우리인간들이란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할줄 모르는 한 무리의 가축 떼에 불과 하지 않던가.

우리에게 진정 가치로 운 것이란 시장에서 비싼 값을 받고 거래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몰가치한 어떤 것도 시장에서 비싼 값을 받았을 때 고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그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느냐의 기준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남들이 행복이라고 알고 있는 가치 없는 것들조차도 자신들의 행복이라 여기며, 남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해버린다.
이들을 니체는 미치광이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악취를 풀풀거리며 암컷의 엉덩이에 코 뿌리를 들이대며 끙끙거리는 지능지수 낮은 원숭이 말이다.

무너져버린 윤리관, 붕괴되어가는 도덕관, 재 정립하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다시는 만나지못하게 될 사회적 연대, 피폐해 져가는 삶의 절멸감, 그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그나마 홀로서기를 종용하는 니체.
이 암흑의 천지에 신을 죽였던 니체만 가득하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자아속엔 언제나 독설의 주인공, 뜨거운 가슴을 열어놓고 끓어 오르는 심장의 피를 철철 흘리던 니체가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니체를 이젠 우리가 죽여야 할 때다.
이유는 자명하다.
니체가 신을 죽인 그때부터 아직까지 행시주육(行尸走肉: 걸어 다니는 시체)의 어리석음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를 못했으니, 이제는 그 변화를 스스로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하지 않던가.

어리석은 자들의 깨우침을 위해 영웅이여 그대의 피를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