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정세훈
딱히 그 나무 이름은 기억 나지 않지만
마지막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어
낙엽은 가을에 지어 가을에 떨어진다 했는데
이놈은 한 겨울에 떨어졌던 거야
그것도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눈 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들은 다 떠나도 난 못 떠나겠다고
이유 없는 억지와 오기를 부려대듯,
앙상한 가지 위에 꼼짝 않고
매달려 있던 마지막 낙엽이
하늘 맑고 청정하여 고요한 날
제 몸 스스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위의 시는 지난 9월의 마지막 토요일
어느 시 낭송회에서 입수한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하신 시인 정세훈님의 낭송시 입니다.
시 낭송을 들으며 문득 내 내면의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내 속에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아둥바둥거리며
죽어도 떨어져 내리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어떤 내 내면 속
에고의 한 자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직 미발표작이라고 하시는 이 시의 원문을
굳이 얻어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힘에 이끌렸는지 이렇게 시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연음악 홈에 올려놓고야 말았습니다.
(혹 시인께서 보신다면 용서해 주시고 아량으로 덮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 혁명] 중 저자후기 '내 영혼의 여정'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 에고가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에는 공포가 다가왔다.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허무 자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에고가 죽은 그 자리에는 진아가 들어섰다. 모든 것이 오롯이 드러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진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는 곧 모든 것이라는 인식이 뒤따라 주었다. 그 하나는 온전히 모든 것이었고, 완전했다. 모든 신분을 뛰어넘어, 모든 성을 뛰어넘어. 심지어는 인간성 자체를 뛰어넘어, 하나는 이제 더 이상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모든 에고를 다 떨구고 오롯히 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 맡길 수 있는
그런 경지!
정세훈 시인의 '화해'의 마지막 구절
/하늘 맑고 청정하여 고요한 날
제 몸 스스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처럼
이 가을에 내 속에 아직 남아 있는
끌질긴 에고도 후루룩 스스로 떨어져 내리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