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암선사가
전하는 이야기 *
도인에게 무슨 한이 있겠는가? 그러나 중생세계에서 이 좋은 법을 섭수하지 못할 때
아프다. 오직 주고 싶은 것밖에 없는데 받아주질 아니 할 때 그렇게 서운하고 외로울 수 없다. 꼭 필요한 법인데도
오히려 경멸과 조소와 외면을 던지는 세상이 아닌가?
이 인간세계는 종교를 의논하는 데에도 미묘한 자아의식(ego)이 작용한다.
'기독교와 불교', '불교와 기독교'의 두 제목 중 어떤 것이 옳은가? 내가 불교인이거나 기독교인이라는 상을 지니고 있다면,
분명히 선후를 비교한 끝에 만족과 불만이 존재할 것이다.
보라, 세상의 엄청난 묵인사항이 '나는 무엇이다'라는 명제이다.
'내가
무엇이다', '너는 무엇이다'라는 구분의 아상(我想)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유발시킨다.
작게는 학벌, 지방색, 크게는 국가주의로
자기를 쌓아놓고 서로 충돌하고는 서로 곤혹에 빠진다. 불교인 입에서 "저 친구 ○○도야", "○○도야" 서슴없이 나오는 분리의식의 독산
구업은 없는가? "도인은 주로 ○○도에서 나온대" 이런식 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인 흑백인종 국가간의 분리된 사상을
떨구어주어야 할 불제자가 이렇다면, 이 지구촌의 망상은 누가 책임지고 없애줄 것인가? 설사 이 따위 것들이 다 없어진다해도 아마 절대자를 빙자한
종교적 자아의식은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부처님', '우리 예수님' 말하자면 우리들과 너희들은 좀 다르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천당의 쾌락을 최고로 아는 ○○(교,
도, 파)인 너희 교리로써 어찌 우리 최상승의 대승도리를 알겠는가?" "너희는
기껏해야 인간의 깨달음을 논하지만 우리는 창조주 신의 자손이다. 어찌 감히 동등한 위치에 서려 하는가?" 이런 논쟁으로 들끓는 지구촌의
편견된 종교의식….
나를 확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신의 이름 혹은 절대자 교주 이름을 빙자하여 우월해지고 성스러워지고 싶은
자아(ego) '나는 불교인 너는 기독교인'의 분리가 없는 마음이 곧 세존의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이거늘.
'나는 예수님의
자손' '너는 더러운 죄인'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 곧 창세기 금단의 과일 '선악과'의 교훈이거늘-. 언제부터 이 지구촌은 선과 악, 미와
추, 우월과 열등을 나누어 놓고 교활한 악업의 삿된 소견이 난무했는가?
혜암선사께서 하루는 성경을 읽으시더니 탄복을 하셨다.
"나로 인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들어 갈 수 없다는 '나'와, 세존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나'는 결코 둘이 아니로구나"
대성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는 예수라는 명사에 끄달려 그 이름으로 인하여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세상을
한탄하셨다. 즉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과 같은 글을 쓰셨는데 제목이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점]이다. 자신의 저서에 이 글이
실려있는데 자신의 저작인데도 실로 이 글이 실리기까지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난관이 많았다. 어째서일까? 주위의 엄청난 반대로 1년 6개월
간을 보류하고 있을 즈음 노선사의 진리에 대한 솔직한 견해의 확신감에 찬 추진으로 결국은 실리게 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참다은 진리의 천명에 그
취지가 있다.
진리에는 세상의 아전인수격인 교만이 용납되지 않는다. 도인의 안목이 너무도 천진하고 순수하므로, 세간의
불협화음을 무릅쓰고 천하에 이 사실을 공표하고 싶어 하셨다. 노선사의 이 간절한 부탁을 받고 이 신문사 저 신문사 쫓아다녔던 시자 스님의
말씀을 듣고 필자는 콧등이 시큰했다. 어째서 세상은 이 글을 용납하지 못했을까?
모 신문사 양반 말씀이 "이런 글 실리면 양쪽에서
욕먹습니다"라고 하더란다. 양쪽이란 어느어느 곳을 말하겠는가? 참으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선각자의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다.
이 양쪽으로 인식되어버린 종교의 분리는 이제 세속인들에게 상식화되어 버렸다. 흑백논리의 전쟁터인 이 종교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었을 때의 일화를 보자. 어떤 사람이 신약성경을 한 선사(禪師)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몇 귀절을 읽었는데
"들에 피어 있는 백합을 보라, 그들은 내일을 위하여 생각하거나 수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그토록 아름답다. 솔로몬의 영화라 할지라도 그토록 아름답지 못하였느니라."
그가 그 선사에게
이 귀절을 읽자
"그만! 누가 뭐라고 하여도 그 게송을 읊은 사람은 선각자이다"하고 단호하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위대한 통찰은
양변을 떠난 깨달을 자만이 서로 미소지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서는 외로운 견해가 아닌가?
"세상이 비웃지 않는 법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옛 선사의 말씀이 증명하는 이 세대여, 부끄럽지 아니한가?
金仙耶蘇本目面 人前各自强惺惺 一坑未免但埋却 不知身在眼子靑 [혜암 禪關法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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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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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빛과 사랑과 함께 스스로 창조의 신성을 꽃피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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