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자꾸 나이 들면서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를 혼란시키는 건 좋지 않은데.
일반적이지 않다는데서 사람들은 매력을 느껴 사랑하기도 한다니까.
그렇다고 억지 사랑을 만들어 하자는 건 아니야.
켄 윌버란 근대철학가가 최근 "과학과 종교의 통합"이란 논문을 발표했었어.
그 논문의 요지는 대략
"과학은 진리와 事實이란 영역을 담당하고,
종교는 가치와 의미의 영역을 담당한다는 분담론 적 견지"였어.
이것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는데,
조심스럽게 그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들여다보면 눈에 드러나는 실루엣이 있더라구.
실은 내가 다 알아 낼 방도가 없으니 차라리, 이것이 나 혼자만의 착시현상이길 바라지만 어찌 보면 그런 생각
조차도 구차하니 정말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마침 자네 메일을 보고 생각을 정리해 본단다.
우리가 철석 같이 믿는 증명을 토대로 한다는 과학이 문명이란 이름표를 달고 나서부터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해 버렸고, 종교역시 인간 철학을 모태로 하여, 세기를 거듭해 오면서 스콜라 학파의 활동을 바탕으로 상당한 발전을 거뒀으나 뭣이든지 덩치가 커지면 그 내면은 스펀지 화 되어버리는 공동화 현상이 생겨나는가 봐.
루터가 주도한 개혁까지 묘한 이데올로기만 만들어 내다가 근래에 와서 조차 전 근대적인 신화적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 아닌가 말야.
요즘은 더 가관이지.
오히려 한술 더 떠 자기네들의 영역 만들기에만 혈안이 되어버렸으니.
당신 말대로,
제법 학승다운 풍모와 재지를 가진 어느 수행승이 "무소유"란 화두하나로 온 나라를 들쑤셔놓았는데,
사실 이 중이 생각해 낸 무소유의 개념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또는 얼마나 그 본질을 이해 할까가 더 지독한 사회적 딜레마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덜 가진다거나 아예 가지지 않는다는 식의 이해 말이다.
그래서 정녕 덜어 내어야 할 것(이건 에고(Ego)다)이 뭔가를 알고 나서,
그 들어 내어야 할 것 만 들어 내어야 하는 건데(Less)말야.
어떻게 생각하면 불교적 개념보다는 도가적 개념이 짙게 깔리거든.
무소유=화광동진=현묘지道 에 이르는.....
암튼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경험,
이를테면 코도 깨져보고, 바람도 피워보고(그렇다고 딴생각 가지면 안 된다), 남들 하기 싫어하는 것을 찾아서 해보고(이게 진정한 공부인데: 하기 싫은걸 하는 게 공부니까) 그런 직접적 또는 감각적 경험을 겪어가는 과정에서 이지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영적인 경험도 가능하게 되잖아.
이런 영적인 경험.
이것이야말로 자아를 강화시키는 좁은 종교로 해석할 때 에고로 똘똘 뭉쳐버리니까 결국 아무짝에도 쓸 수없는 思考장애자가 될 수밖에.
우리나라의 많은 종교 지도자가 이런 장애자를 만드는 앞잡이 노릇이나 한다면 정말 난처한 일이 아니겠냐.
켄 윌버가 내린 결론처럼 현대인이 참 과학과 참 영성의 통합을 통해서야만 전근대와 근대를 넘어 진화하는데 그 사상적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난 동의 한다.
감각적인 협의의 과학만으로 경험을 대치하기보다는......,
뿐만 아니라,
그런 경험만을 주장하는 것을 뒤돌아 앉아 외면해 버리기 보다는
광의적인 영적 경험과 이지적 경험 까지를 아우러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된다는 거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오유지족 할 수 있는 것도 남보다 먼저 내면의" EGO"를 "LESS"하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어려운 공부를 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
뭐든지 깊어지면 종교 같은 의지력이 생겨나지 않을까?
심지 말이야. 굳은 심지!
우린 열심히 살자!!
그 열심히 안에는 웅덩이보다 더 깊은 게 감춰져 있단다.
태풍이 온다고 어수선 한 날.
당신의 친구 선비가
곱씹어 읽어도 제가 다 이해를 못하는 어려운 말씀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저도 철학을 읽는다는 재미가 있습니다. ^^
법정 스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다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취할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견해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린다면 소중한 것에 눈을 감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그 분의 삶과 생각이 저를 비롯한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정신을 맑게 정화시켜 왔다고 저는 아직도 믿고 있답니다. 제 식으로 이해한 것만 말씀 드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