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나는 안타깝습니다.
야생에 있는 새끼 짐승을 집에서 기르다 보면 결코 야생으로 돌려 보내기란 쉽지 않는것 같습니다.
얼마전 영국영화인가?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하며 침팬지에 관한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속에서 동물원 우리에 갇힌 침팬지를 보며 영혼을 잃었다고 표현합니다.
이미 자유라는 것을 생각할 수 도 없을 만큼 길들려지고 익숙해졌다는 표현이겠지요.
마치 불편함을 불편함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것이 자유인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잇는 세계에도 별반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연속의 인간에서 근본을 모르고 분류하거나 규정하거나 그것으 자연스러운 까마귀의 깃털처럼 생각하거나 당연시하는 것들 먹는것뿐아니라 빈부의 격차까지도 모든것은 그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길들려져왔고 스스로도 길들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솝우화에 오리알속에서 독수리가 부화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점점 자라나자 자기가 다르고 못생겨지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자학하고 또 주변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자기 부리로 자라나는 날개의 깃털을 뽑아내곤 하고 오리들 처럼 헤험을 쳐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부리를 돌에 갈아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익숙한것들 먹는것, 입는것,생각하는것,말하는는것.....
그것은 어디서 왔나요.
우리는 매일 좋은 말씀을 듣거나 보거나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 생활에 뼈와 살속에 녹아 잇는 피처럼 행동과 생활를 하나요.
다시금 부메랑처럼 돌아와 목마른듯 마시고 다시금 나가 보지만 역시 변할것이 없이 나약한 몸짓만 있을 뿐입니다.
다만 설경자의 유희일 뿐입니다.
그런것을 안다는 것은 다와 다르다는 분별의식만 지어낼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줍지 않은 선민의식을 고취시키고 스스로을 위로할 뿐입니다.
그리고 감정의 이입으로 스스로의 카타르시스를 즐길 뿐입니다.
마치 입은 천국연못에 떠있고 몸은 다른곳에 잇는 꼴이지요.
늘 변화를 생각하고 마음을 다시금 세우고 찬바람속에 나가지만 돌아오는 길을 허전하고 발거름이 무거울 뿐입니다.
고무줄을 당겨서 멀리 보내고 싶은데 멀리보낸것이 아니라 자기가 잡아다닌 손을 놓아서 눈만 멍들어버린 꼴이지요.
상처을 생각하는 마음에 상처속에 또다른 상처를 만들고 그것이 고질병이 되어버리고......
오늘도 바람에 날리기 쉬운 색종이로 이쁘게 차려입고 가마귀처럼 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