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부서진 바위들이 날카롭게 서있거나 굴러서 서로 이갈려 있는것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넘어지면 정말 크게 다치고 말지요.
조심스럽게 바위을 피하거나 밟을 수밖에 없다면, 제대로 발의 위치를 잡았나 보야합니다
왜냐면 서로 물려있는 상태가 성글다면 와르르 무너질 수 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가능한 돌아서 가는것이 좋겠지요.
그 길을 좀 더 내려오면 바위들이 조금씩 귀퉁이가 깨져서 부드러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것들은 잘못깨져서 더 날카롭고 뾰죽해서 송곳처럼 되어 버린것도 있지요.
아까 그곳은 나무들이 전혀 자랄 수 없지만 이곳은 넝쿨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볼수잇습니다.
왜냐하면 휠줄 모르는 나무들은 서있기 때문에 부러지는 것은 , 굽힐 줄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넝쿨나무들은 자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연하게 날카로운 바위의 허리를 감쌓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다래나무나 칡넝쿨이나 으름,머루,인동등 이지요.
그러나 그곳도 안심할 곳이 못됩니다.
그곳에서 좀 더 내려오면 폭포를 만납니다.
폭포의 그 굉음 그 물보라속에서 누워 있는 돌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속에도 귀퉁이를 세우고 있는 돌들도 있지만요.
아마 돌이라고 부를 수 있는것은 아마 그들이 돌돌구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폭포의 강한 수마에 마모가되어 그들은 개울로 나올수 있습니다.
아마 이제는 그들의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되지 않나 싶군요.
강의 돌을 바라 보면 우리가 발로 밟아도 다치지 않습니다.
바다에 이르러 밀물과 썰물속에서 헬수없을 만큼
몸을 굴리는 조약돌을 볼수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요.
얼마나 긴 여행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만들었겠습니까?
그 부드러운 자태속에는
산의 바위의 모습과 폭우와 눈보라와
몸을 가르는 뜨거운햇살과 수천년의 침묵과 기다림이 있지 않겠습니까?
살면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심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피하고 그렇게 좋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부디치기도 다가 오기도 싫어한다면
산길을 내려오면서 바위를 바라보세요.
아니면 그와 반대로 그다지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것도 특별히 말을 잘하는것도 아닌데,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면
산길에서 내려오며 바위을 바라보세요.
산다는 어려움이 눈보라,폭우나 폭포와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모난 곳을 조금씩 둥글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가 싶습니다.
설령 고난일지라도 우리의 운신을,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모난 에고, 교만를
둥글게 만드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령 상처를 받았다면
모난곳이 많은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준것이
다시 내게 돌아온것이라고
누가 나를 이유없이 미위한다면 아직도 내게는 모난 곳이 많구나 생각하십시요.
그리고 강이나 바다의 돌들의 여행을 생각하십시요.
우리의 생의 여정은 그런 세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동이예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