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기도속에서 나와 그대가 만난다"
그런말을 데레사 수녀님이 말씀하신것 같다.
"나를 만날려거든 야반 삼경에 빗장문을 만저 보아라"
경봉스님이 돌아가실 때 "스님을 뵐려면 어디에 가야함니까?"라고 물으니 그렇게 대답하셨다.
전자는 이해를 하겠지만 후자는 잘모르겠다.
물론 아는것이 아니겠지만.......
어쨌든 깊은 기도나 야밤에는 도데체 누구에게 보이고자 함은 아니리라 드러냄이 아닌가 생각한다.
계절은 아무말없이 모든것을 드러낸다.
들꽃이 핀다고 분주하게 떠들지 안아도
그 벌판에는 쫙깔려 피었다.
그저 피는것이다.
그저 피어있는 것이다.
누가 사랑해달라고 했나?
나는 널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 안하니?
너는 왜 나를 배신하니?
그의 배신이지 나의 배신은 아니지 않니?
너는 배신 하지 안는 걸 기대하고 날 사랑했니?
그것이 내 사랑이라면 너는 실망할 이유가 없잖니?
실망한다면 이미 사랑은 없는거 잖니?
그것은 이미......
나는 너에게 희생했는데 도데체 너는 나에게 준것이 무엇이니? 받을려고 하는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미 사랑은 받았기 때문이다 사랑했기에......
부모의 사랑은 그저 있을 뿐이다.
받을려는 마음이 없기에 이미 자식을 사랑하므로 받은것이다.
왜? 그가,그녀가,딸이,아내가,부모가 기뻐하면 이미 나는 그 기쁨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저 기쁨은 절로 오는것이다.
사랑은 기약하지 않는다 사랑는 미래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도 아니다
지금 이순간이다.
나는 종종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것을 본다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럴수가 있어?
그것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래이기 때문이다.
거래나 의리라면 이해가 가지만 사랑이라면 이해가 안되는 말이다.
깊은 기도속엔 사랑이 있다.
그속에는 생명을 살리는 길이 잇다.
침묵,고요,하심,맡김,겸허.....그속에서는 함께 만난다 물결처럼 지하수처럼.....사랑은 주장이 아니다 내세움이 아니다 자기색의 주장은 서로가 알아주고 알아줌이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랑, 도는 아니다.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