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스스로의 길이 있지만 그러나 그 길이 어떠한 길이든 한 생명으로서 주어지는 것은 동일하답니다.

우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모두를 태어나게 한 하나의 지구 위에 있으며, 같은 공기를 마시며, 이어진 시간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세포와 장기가 있고 그 나름의 길이 있지만...
몸이 아플때, 한 장기가 아플때 다른 장기들과 세포들도 그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기능을 저하시키거나 정지,
또는 백혈구와 같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치유를 다합니다.

우리 지구는 어떠할까요?
인간 이외에 지구에는 수없이 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나무, 곤충, 개미, 동물... 박테리아 까지...
나무가 없다면 누가 공기를 맑게해주며, 사막화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개미가 없다면 누가 썩은 그것을 흙으로 빨리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박테리아가 없다면 누가 썩은 물체를 흙으로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은 단 하나도 모두의 삶을위해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돌조각 하나일 지라도 말입니다.

우리 한 사람의 삶을 보세요.
오늘도 차를 타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마시는 공기를 오염시키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오늘도 차를 씻고 더러운 물을 버리며 더러운 것을 버리며 우리가 마시는 물이 더러워지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나무 젓가락을 쓰면서 이렇게 한번 쓰고 버려지기 위해서 수십년을 살았던 나무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내뱉은 무책임한 말에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시 되돌아옵니다.

내 오염된 공기, 더러운 물, 그리고 당장 내 곁의 사람들에게 내뱉은 말, 차가운 표정과 무서운 얼굴은...
차가움과 상처, 공포로 다시 되돌아오게됩니다.

옛부터 머리카락 하나 다치는 것도 큰 불효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시고 삶을 살도록 해주신 나의 조상, 나의 부모, 나의 나라, 지구, 그리고 나의 존재를 위해서 지금 이순간도 희생하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을 생각하고 유념한다면 감사와 고마움, 그리고 효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이 태어나고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갑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이 택한 삶을 최선을 다하여 긍정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하나이나 그것은 결코 외따로 떨어진 영원히 분리되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도 결국 하나이고 그 구성원도 역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사람... 인간으로서 옆의 사람이 죽고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그것은 너의 길"이라며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결국 전체가 죽게됩니다... 그리고 전체가 괴로워지고 그것이 하나하나 모두에게 돌아오게됩니다.
결국은 그 원인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지구의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남한과 북한의 일만을 들어서 생각해볼까요?
분단과 인권문제등 모든 문제들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있을때 자기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상관없지 않냐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지금 위치에서 삶을 살고...
"나"의 조상이 있었기에 지금의 삶을 살고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수없는 피를 흘린 조상들과...
피를 흘리지 않았더라도 한 사회의 일부로서 그때의 대한민국인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며 다른 모두에게 영향을 주며
남한에 살았었던 조상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이전 열강들의 침략을 받기 이전의 조선말...
뜻있는 선비들과 뜻있는 사람들의 주장과 실천을 외면했던 그 당시의 백성들...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이전 반상의 구분을 짓고 서로 울분과 원한을 쌓아왔던 옛 조상들의 삶을 생각해보세요.
거기에서 사회구성원 전체적인 변화의 긍정적인 힘은 생길수 없었습니다.
또 그 이전도 많습니다...

그것 모두가 이어지고 이어져 내려와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현실속에 우리들은 태어났고...
우리모두는 조상들의 삶... 그리고 그 삶에 따른 주어지는 숙제들...
그것을 모두 물려받았고 지금 우리에게 당장 주어진 숙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의 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법이든, 거부하기 어려운 공포가 가로막고 있든 그것을 문제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한 할수 있는한, 깨달은데 까지는 이루어야할 것입니다.

수행은 결국 "하나"를 되찾는 삶이라고 봅니다.
"모두"는 더욱 깊이 스며들고 완전히 하나가 될 정도로 합일됩니다.

저는 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존재의 관점으로 보고자 합니다.

북한의 300만의 죽음과... 지금의 비참한 삶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
그들만의 삶...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만 한다는 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곧 "전체"의 문제, "나"자신의 문제입니다.

그 관심은 적극적인 수행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직접적인 과정입니다.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무엇무엇이냐..하고 떠올릴 필요없이...
내가지금 북한에 있다면...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북한에 잡혀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느낄수 있는 모든 순간에서 나의 모두를 다하여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일부로서, 그는 나의 일부로서 존재하기에, 그들은 우리의 일부, 우리와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값으라고 태어난건지 아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죄를 값는것 이상으로 모두에게 기쁨과 사랑을 주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 사람 아니겠습니까?
오늘과 내일 "나"의 선택으로 누군가 기뻐하고 삶에 희망과 감사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나"의 삶도 비로소 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광선님...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비천하다고 하지 마세요.
왜 비천합니까?
저에게만 있어서도 이광선님은 서로 교학상장하는 고맙고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속에 담긴 겸손과 존중의 뜻은 누구나 알수 있지만,
그것보다 상대를 위하고 존중한다는 뜻이 드러난 말이 더 좋을것 같습니다.
그것은 결국 "나"와 상대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광선님의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뜻있는 생각 잘 받아들였고 들었습니다.
이광선님도 성통공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