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본 이야기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과학의 수단으로 식물도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증명되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은 하나도 없다. 다만 움직임이 동물에 비해 너무 느려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식물은 빛을 향해 줄기를 뻗고, 머리를 짓누르는 큰 나무 가지를 피해 옆으로 휘고, 중력을 따라 뿌리가 땅속으로 박힌다.
이런 단순 움직임 말고도 판단하고 적응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지구 중심으로 뻗던 뿌리도 가물면 수분이 있는 위쪽으로도 뻗는다. 덩굴식물은 먼 곳에 기둥이 될 만한 나무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쪽으로 다가간다. 해바라기는 해가 없는 밤동안에 서쪽에 가 있는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놓는다. 미모사는 잎을 재빨리 오므려 해충이 놀라 떨어지게 한다. 파리지옥은 20초안에 덧안의 가시를 두번 이상 건드려야 지옥문을 닫는데, 이것은 바람에 휘날리는 가랑잎이나 모래에 속지 않으려는 작전이다.
식물은 저희들끼리 통신도 한다. 자신이 벌레의 공격을 받게 되면 이웃 친구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전기적으로나 가스, 호르몬 등으로 신호를 보낸다. 전달되는 속도는 동물의 신경세포가 전달하는 속도의 1/100에 불과한 1분에 약 24m정도. 전기신호를 못 받게 막아 놓으면 통신이 두절돼 이웃의 식물은 해충의 공격을 받는다. 반대로 신호를 받게되면 식물은 재빨리 해충이 소화할 수 없는 물질을 분비해서 벌레를 쫓아버린다.

식물이 음악을 듣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음악도 있고 싫어하는 음악도 있다. 음악을 들으면 더 잘 자라며, 병에 강해지며, 해충을 막는 물질이 생기며, 더 예쁘게 자라며 열매도 더 달다.


음악을 듣는 순간 심한 격동
식물에 귀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귀가 없는데 어떻게 음악을 감상하겠는가? 음악을 들려주고 식물체내의 전류를 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음악을 들려주는 동안 전류가 심하게 떨린다.

우리 몸도 그렇긴 하지만, 식물의 온몸은 세포로 구성돼 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음악과 음파가 고막을 떨게 하고 청신경이 이것을 받아 뇌신경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음파는 세포막을 떨게 하고 이것이 원형질을 흔들어 운동을 활발하게 만든다. 따라서 식물은 온몸이 귀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음악을 들려 준 식물은 엽록소가 많이 만들어져 광합성을 활발하게 한다. 음악은 잎 뒤 숨구멍을 많이 열게 해 가스교환과 잎에 뿌려 준 양분을 많이 흡수하게 한다. 잎으로 흡수가 잘 안되는 철, 아연과 같은 성분이 최고 67%나 더 많이 흡수된다. 세포 내에서 축전지 역할을 하는 ATP도 많이 만들어진다.


바람과 손장난을 구별
다음번 과제는 식물이 어떤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를 구별해내는 것이었다. 음악시험은 참 어렵다. 음악을 들려주면 소리가 근처에 다 들린다. 비교를 하려면 들리지 않는 곳까지 멀리 떼어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흙이나 다른 환경이 달라져 버린다. 게다가 차이를 보려면 식물을 키워야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음악 효과를 빨리 알아내는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식물의 전류를 측정해 보는 것이었다.

식물체에는 항상 10-50mV의 전류가 흐른다. 전류측정계를 뽕나무에 연결하고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았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비록 전류측정을 통해 식물이 좋아하는 음악을 가리는데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손으로 잎을 건드리면 전류가 신경질적으로 튄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몸의 정전기 영향이 아닌가 해서 유리막대기로 건드려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 놈을 건드리면 예민한 놈은 이웃 방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는 선풍기를 틀어 주었다. 바람이 잎을 사정없이 흔들었지만 전류는 단 2분 정도만 반응했을 뿐 그 후에는 잎이 흔들려도 평정을 되찾았다. 나무는 바람과 바람이 아닌 자극을 구별하고 있었다.

놀라운 적응력이 아닐 수 없다. 밤낮으로 불어 대는 바람에 일일이 반응했다면 에너지가 고갈돼 나무는 모두 죽어 버렸을 것이다.


타악기보다 현악기 좋아해
식물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우리 격언에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옛 어른들은 곡식이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자주 밭에 나가 보살펴야 소출이 많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보살펴 주는 주인의 발소리에 행복을 느껴 곡식들은 더 잘 자랄 것 같다. 지금도 모내기를 하고 들에서 한바탕 사물놀이를 하는 마을이 있다. 그렇게 하면 소출도 많고 병해충이 덜 난다고 전해왔고 해본 사람들은 효과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식물은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 헤비메탈이나 록음악보다는 고전음악을 좋아한다. 사람의 소리는 좋아하지 않고, 음역이 2천Hz 대를 좋아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고 2천Hz 대 음역의 음악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타악기로 연주한 음악보다는 현악기를 좋아한다.

우리 연구팀은 지난 1992년 우리 음악을 만들었다. 원래 가져온 미국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가 배경으로 고주파의 인조(人造) 새소리가 들리는데 오래 듣고 있노라면 싫증이 났다.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의 음악이 필요했다.

우리 음악은 우리 정서에 맞는 명랑한 동요풍의 음악에 자연에서 직접 녹취한 새소리, 물소리, 소와 염소의 울음소리 등을 섞은 음악이다. 1993년 봄, 이름을 그린음악(Green music)이라고 지었다. 음악은 비료나 농약처럼 자연에 남아 공해를 만들지 않고 식물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

지난 1994년 늦가을 우리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1995년 3월 재빨리 'Green music'이라고 미리 상표등록을 해버렸다. 연구에만 매달려 있는 우리에게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특허를 출원하면 이름까지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소녀 같은 미나리
음악이라고 해서 다 식물에 좋은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헤비메탈처럼 시끄러운 음악은 콩나물 대가리를 95%정도까지 깨지게 한다. 우리 연구팀은 여러 가지 음악을 비교해 본 결과 세 번째 만든 그린음악이 다른 음악보다 식물 생육에 가장 좋은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편 음악을 들려주어도 식물에 따라 효과가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인다. 식물도 음악에 매우 민감한 종류가 있는가 하면 아주 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효과를 보인 것은 양란 심비디움, 미나리, 오이 등이다. 이중에도 미나리가 가장 민감하다. 이들은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것보다 30% 이상 더 자랐다. 뽕나무, 장미, 총각무, 얼가리배추 등은 10-30% 정도의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글라디올러스, 고추, 국화, 벼 등은 반응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나리는 소녀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예민하게 전류의 변화를 보이지만 양파는 둔하다. 음악을 들은 잎은 곧곧하게 서고, 더 푸르고 잎가의 톱니가 더 날카롭다.

음악을 들려주면 병에도 강해진다. 무를 기르면서 그린음악을 들려준 것은 3% 정도,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것은 25%나 뿌리가 썩었다. 건강하면 당연히 병에 강해진다. 음악이 병을 이기게 하는 것은 내병성 효소 베타-글루카네이즈(1-3)-β-glucanase)를 몸속에서 더 많이 만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린음악을 들려준 하우스에 들어가 보면 식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게 자라는데 비해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것들은 자람이 나쁠 뿐만 아니라 이웃한 것들끼리 등을 대고 있는 것 같고 들쭉날쭉 자란다.


사랑 받는 꽃 더 예뻐
일본에서는 우동국수와 정종, 빵을 발효시키면서 베토벤과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 준다고 한다. 미생물조차도 음악을 듣는다는 주장이다. 국수는 더 쫄깃거리게 하고 빵은 더 구수한 맛을 갖게 하며, 술은 향기가 높고 알코올도수를 높인다는 것이다. 당연히 값도 비싸다. 식물이 활동을 시작하는 아침 6시경부터 9시사이에 한시간 이상 음악을 들려주면 알게 모르게 더 예쁘게 자란다. 비발디와 베토벤과 하이든 같은 고전음악도 괜찮다.

식물에게 사랑을 주고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은 가족과 이웃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 머지 않아 가축이 좋아하는 음악도 개발될 것이다.

이른 아침 농촌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질 것이다. 농민은 소출을 더 얻고 약도 덜 치게 되며, 소비자들은 맛있고, 농약이 적은, 안전하고 이로운 먹거리를 만나게 된다.

먹거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먹거리에 음악이라는 예술이 녹아 들어가고 있다. '베토벤 음악을 들은 토마토' '그린음악을 감상한 상추'가 그 예이다.



< 글 : 이완주(농촌진흥청 잠사곤충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