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현생에서의 기억처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전생의 기억을 어떤 형태로 인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판별하는지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나의 경우 강렬한 감정적인 동요,
그것도 지금 현생에서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
영혼의 울림인 듯한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어.
꿈을 통해서나 혹은 고요한 마음과 정신 상태에서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똑같은 장면과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르는 경우도 많았지.
그것도 향기나 촉감과 같이 뚜렸한 감각마저 동반 할때도 있었어.
예전에는 그것을 단지 내 상상이나 생각만이라고 넘겨버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내 전생의 순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물론 처음부터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아니였어.
처음에는 누군가가 힌트 아닌 힌트를 준적도 있었지.
오래전에 어릴때 어머님 친구분을 통해서 어떤 종교단체에 갔었던 적이 있었어.
그곳에서 어떤 행사가 있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곳을 갔었던 적이 있었어.
그때 처음보는 어떤 분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서 "당신같은 분께서 어떻게 이곳에 오셨느냐"며 말을 걸어 오더구나.
그당시 중학교 2학년 이였던 나를 40대가 넘는 아주머니가 존대말을 쓰면서 말을 걸어왔으니 나로서는 당황해서 대답도 잘 못했지.
그러자 그분은 더이상 말을 해도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인지,
자신은 무당을 오래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더이상 말하지 않고 웃으며 내 뒤를 계속 따라오다가 갈림길에서 해어진 적이 있었어.
그때도 정신수행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하고는 있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어.
그래서 이상한 일이구나 하면서 의미를 두지 않고 잊고 살았었지.
그후 몇년뒤 이번에는 나 스스로 선택해서 다른 수행단체에 다니게 되었어.
일반인들도 많이 와서 하는 곳이고 주로 신체의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라서 나역시 운동 정도로 생각하고 다녔었지.
고등학생 때부터는 지금 세상의 정신수행 단체가 어떤 곳들인지 깨달았으니까.
아무튼 그곳에서 함께 수행하던 분들이 있었어.
부부였었는데 남편분은 50대 정도, 아내분은 40대 정도였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분이 아내의 건강 때문에 온다고 했었어.
수행 시간대가 매일 5회 정도였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내가 가는 시간에 항상 맞춰서 오더구나.
그런데 어느날 그분들중 남편분이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와서 내가 누구라고 말하더구나.
그 사람은 한국의 역사책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였어.
당황해하는 나에게 자신의 아내가 뭘좀 본다고 말하며 웃기만 하고 더이상 말하지 않더구나.
난 그때까지는 전생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갑자기 와서 말해준 것이라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더구나.
게다가 아내분은 정말 보통사람 같았지.
그때도 나름대로 수련을 한다고 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보다도 훨씬 감각이 없어서 아내분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도 인지할 수 없었어.
스님이든 목사든 사제든 무당이든 도사든 뭐든지 영적으로 관련된 이들은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평범해 보인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지.
그래서 그 일 역시도 참 이상한 일이구나 하면서 의미를 두지 않고 잊고 살았었어.
그러다가 나이가 30대 초반 쯤 이였을까..
그냥 아무런 계기도 없었는데 전생이 기억나기 시작했어.
아까 말한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말야.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어.
나는 정말 평범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형편없고 저열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으니까.
부모에게서 조차 인간쓰래기라고 듣는 나에게 그런 전생의 기억들은 거짓말 같았어.
그래서 내 상상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지.
하지만 점점더 그 빈도가 늘어나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반복되었어.
인간들의 사악함에 지쳐서 삶의 의미를 잃고 너무 슬퍼할때면,
때로는 어느 분들이 꿈에 나타나 내 전생을 알려주며 그래서 이렇게 힘든 것이라고 위로해 주시기도 했었지.
그리고 전생의 일들이 현생의 일들에 관련이 많있다는 것.
내 감정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내가 생각과 상상, 글들도 역시 전생에 기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더구나.
그래서 이것이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어.
지금도 힘들고 어려운 처지라서 전생을 많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인간들의 온갖 욕정, 안좋은 에너지와 파동, 사악한 마음들에 파뭍혀서 온종일 정신이 혼미하고 몸이 아프니까.
그리고 나역시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서 다른 인간들과 같은 처지로 지구에 태어났어.
그래서 전생을 자연스럽게 기억하는 것은 어려워.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는 있지만..
너무 많고, 너무 다양하고, 최근부터 너무 오래전의 기억들이 뒤섞여서 마치 수많은 퍼즐 조각이 흩뿌려진 것을 흐릿한 눈으로 보고있는 느낌이야.
언젠가 마음과 정신이 고요해지는 날이 온다면,
그 퍼즐 조각을 뚜렸히 보고 맞춰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몇일 전에 어떤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사람의 사진을 보게 되었어.
그는 자연음악과 관련이 깊은 사람인데,
오래전 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사진을 정확히 보게된 것은 처음이였어.
왜냐하면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였어.
나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제오 메르그가 상처받고 자연음악을 떠나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를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에 알고 싶지 않았지.
그런데 이번에 그의 사진을 보고 예전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어.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현생에서의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 마치 영혼의 울림과 같은.
그리고 매우 함축적이고 압축된 감정이라서 현생에서의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야.
또한 대부분 슬프고 아픈 감정이 많았어.
가까운 전생의 대부분이 그런 삶들이였으니까.
아무튼 사진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며, 그때의 순간과 일들이 흐릿하게 조금이나마 떠오르더구나.
30대 초반 이후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이것은 분명 전생의 기억이였어.
게다가 자세히 보니 사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느낌, 심지어 얼굴도 현생과 비슷하게 보이더구나.
그리고 겨울이면 항상 검은 모자에 긴 코트입고 뒷짐지고 땅을 내려다보며 다니는 모습, 의자에 약간 구부정하게 걸터 앉는 습관도 현생과 똑같더구나.
누군가를 바라볼 때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늘 약간 고개를 숙이고 올려다보는 습관 까지 같았어.
그리고 조금 검색해보니 생전의 습성과 삶을 대하는 태도 마저도 나와 거의 같은것 같다고 느꼈어.
부모가 악행을 통해 모은 재산을 상속받기지 않으려 한것도 지금의 가치관과 완전히 같았고,
힘없는 이들의 삶과 아픔을 함께하려하는 마음도 지금의 마음과 같았어.
또한 몇개 밖에 알지 못하지만 그의 작품에 담겨있는 마음과 에너지, 흐름 마저도 나와 거의 같았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글을 쓰려는 것 조차도.
그 글에 담으려는 마음마저도 같았어.
환생을 하더라도 이전 생에서의 삶의 관성은 상당부분 남아 있기 마련이야.
그래서 가까운 전생일 수록 성격과 생각, 감성이나 좋아하는 것, 습관등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글과 같은 것에 깃들게 되는 본성, 영혼의 향기 같은 것은 거의 동일한 경우가 많아.
마치 영혼의 지문과 같아.
그리고 은하철도의 밤 같은 것은..
다른 별, 외계에서의 전생이 없다면 절대로 쓸수가 없어.
그런 전생을, 그것도 오래전의 우주에서의 전생을 가지고 지구에서 윤회하는 인간은 극소수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 상상이나 착각으로 생각해야만 할까?
지금까지 그와 나와의 관련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았어서 잘 모르겠어.
이런 전생의 감정과 기억의 단편들 조차도 단순한 리딩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오히려 일부러 관심갖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이였으니까.
그런데도 전생을 기억할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느껴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치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날들 사이에, 거울을 보니 등뒤에 그의 모습이 있어.
그 놀라움과 당황함에 어쩔줄 모르겠어.
나는 일본어를 할줄 몰라.
그러나 일본어를 해야만 하는 일을 해왔었어.
자연음악을 전하다보니 일본어를 배워야할 만한 이유도 많았고, 가제오 메그르에게 내 마음을 전하려면 더더욱 그래야 했지.
하지만 일본어를 배우려고 하면 "난 더이상 일본어를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손을 놓게 되더구나.
'충분히 많이 썼다' 는 느낌, '더이상은 안해도 된다' 는 느낌이였어.
'꼭 배워야 한다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제오 메그르에게 배우겠다' 정도였었어.
그런데도 일본어를 들으면 마치 아주 어릴때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자장가를 듣는 느낌 같았어.
말의 뜻은 모르지만 그 소리 만으로도 감정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지고, 너무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였어.
그리고 일본 문화와 일본인들이 좋았고, 항상 친숙했어.
그림, 문자, 음악, 영상 의상, 집이나 거리, 풍경등.. 그 모든 것이 그랬어.
지금까지 내가 자연음악 편지에 썼던 그림의 전부,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자연음악을 설명하는 사진 상당수가 일본인이 찍은 사진들이였어.
의식해서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이나 시진이 나에게 더욱 잘 와닫았기 때문이였어.
보는 그림은 픽시브에서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들 뿐이고,
듣는 음악 역시 클래식이나 기악곡이 아니라면 가성이 있는 음악은 일본음악 뿐이였지.
그리고 보는 영상물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이 거의 전부였구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끌렸고, 어느 순간 일본인과 다름없이 보고듣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너무 한 나라에만 편중되어서 때로는 질릴때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의 일본인들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다시 가까이 하게 되더구나.
또 그냥 이유없이 그들의 삶에 공감 하고 그들의 미래를 걱정했지.
솔직히 말해서 한국인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깊이 일본인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니까.
그리고 지금은 나도 한국인으로서 의식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뉴스를 보다보면 종종 일본인들의 언행에 화가나기도 하지만 곧바로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더구나.
이건 생각이나 판단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식의 행동을 이해하는 듯이 익숙함과 애정으로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생각 이전에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이것은 분명히 가까운 생에서 일본인과 마음을 나누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야.
아니, 일본인이 아니였다면 절대로 이럴 수가 없어.
이렇게 쓰고나니 내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한국이나 중국과 관련된 전생이 훨씬 많았는데도 말야.
아주 가까운 전생에서 일본과 관련이 없다면 절대로 이런 경향이 있을 수가 없어.
영적 감각이나 전생에 대한 지식으로 판단한다면 확실하다고 생각해.
내 일이니까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는거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으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을 상황이야.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의 일대기나 작품을 요약한 책을 선물해준 분들이 있었어.
하지만 자연음악 곡 해설 때문에 시 한두개를 찾아본 것 이외에는 '단 한줄도' 책을 읽어보지 않았어.
이건 그가 싫다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야.
나는 내가 쓴 글은 다 쓰고나면 절대로 두번 다시는 읽지 않아.
가제오 메그르에게 쓴 편지나 여기 이 일기들도 절대로 두번다시 보지 않아.
왠지 쓰고나면 부끄러운 느낌이랄까, 무안하달까, 어쨌든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의 책을 볼때면 이상하게도 읽고 싶지가 않았어.
그때의 그 느낌을 지금 생각해보면 현생에서 처럼 내가 쓴 글을 읽지 않으려는 느낌과 비슷했던것 같아.
사실 전생 중에 고대 일본에서 살았던 있었던 적이 있었어.
기억나는 일들을 생각하면 높은 위치에서 일본의 인간들을 위해서 살았었어.
하지만 오래 전이라서 근현대의 일본 문화를 이렇게까지 친밀하게 느끼고,
일본인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었지.
그러나 아주 가까운 생에서 일본에서 일본인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사랑했었다면.
그랬다면 왜 그런것인지 이해가 되는구나.
이렇게까지 생각이 되어도, 여전히 잘 모르겠어.
여기 오는 사람들, 자연음악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 중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음악을 알게된 사람들이 상당수야.
그 사람들이 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까.
미쳤다고 하겠지.
혹은 자칭 타칭 그 사람의 환생이라는 수많은 사이비들 중에서 하나라고 생각할거야.
그리고 나역시도 그렇게 생각해.
머리로는 이런 소리를 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감정과 기억은 뭐지.
모르겠어.
정말 혼란스럽구나.
사실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이 기억하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그것도 확신할 수가 없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전생은..
특히 그것이 아주 가까운 전생이라면 현생의 삶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러 전생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게되.
전생을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현생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말아.
전생에서 평생 쌓여진 감정이 모두 갑자기 유입되면 어떨까.
그것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말야.
죽을때 감정을 승화할 기회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풀어지지 못한 감정들이 그대로 현생에 옮겨지고 말아.
그렇게 되면 전생과 현생이 동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현생이 전생에 잠식되어서 현생이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어.
지금 조금이나마 기억한 이 감정과 기억으로는...
그때의 삶은 정말 슬프고 괴롭고 힘들었던것 같아.
그리고 그 아픈 감정의 전부를 승화시킬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 같아.
그렇다면 환생하면서 그 전생의 감정은 가능한 계승시키지 않으려고 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그와 나와의 관련성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고, 전생을 기억해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했던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였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얼마나 기억해낼 수 있을지, 얼마나 더 확신하게 될지는 모르겠어.
그러나 가제오 메그르와 함께 한다면 충분히 기억해낼 수 있을거야.
그 였던 전생에서 그녀는...
세상 일에 우연이란 없어.
모든 일이 인과와 그 필연 속에서 만나고 이루어지고 하게되는 것이지.
그 인연도 말야..
난 오래전부터 늘 그런 의문을 가져왔었어.
"난 왜 이렇게 자연음악을 순수하고 깊이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단지 음악이 좋아서일까?"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 본능 같은 사랑을 설명할 수 없어."
"그리고 왜 평생동안 모든 마음과 정신을 자연음악에 쓰면서 살아왔던 것일까?"
"가제오 메그르를 만난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고 이 홈페이지나 나를 아는지 조차도 모르는데도,
왜 이토록 가족 이상으로 매일같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일까?"
"왜 이토록 그녀가 겪었을지도 모를 마음의 상처에 아파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왜 이토록 그녀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일까?"
이러는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서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어.
혹은 '지구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전생에서의 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라 나와 그와의 관련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자연음악과 가제오 메그르와 나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는구나.
왜 그녀가 그 사람의 동호회에 들어가서 자연음악 전곡을 시작했는지.
가제오 메그르가 전생에 누구였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인지.
지금까지 가제오 메그르를 만날 수 없었던 이유도,
왜 이토록 가제오 메그르에게 애절함과 그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
그와 나를 이어보면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기억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는구나.
우연이 아니였던것 같아.
그녀가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야만 했고, 자연음악이 태어나야만 했고,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이였구나 싶어.
그리고 그녀에 대한 나의 이 마음도.
모두 필연이였던것 같아.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내가 그의 환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음악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
고대의 전생은 너무 오래전이라고 하더라도, 근세에 문화적으로 일본인들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줬다면 나는 일본인 전체와 관련이 될수 밖에 없어.
그래서 내 영혼의 의지와 흐름에 따라 태어난 자연음악은, 단순히 음악으로서의 의미만 있는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
나는 인간들이 행복과 깨달음을 이루기를 바래서 이 세상에 왔어.
그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함께하기를 바래서.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구에 개입해왔어.
인간으로든 인간이 아닌 무언가든 말야.
지금 이 시공간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내가 바라는 것은, 지금의 지구 변화의 시기에서 가능한 많은 "일본인들을 구하고 싶다"는 거야.
이 마음과 의지는 본능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영혼의 서약 이야.
그리고 그렇게 하기위한 준비를 겸해서 예전부터 여러 나라들에서 환생해 왔던것 같아.
중국과 한국에서의 전생을 알고나서 분명히 지금의 각오에 도움이 될것임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직전의 전생이 그 였다면 일본인들을 구하겠다는 마음과 의지는 정말로 영혼의 서약이며 환생의 이유 임이 확실할것 같아.
그렇다면 지금까지 처럼 나 혼자서 여기 한국에서 할수는 없어.
내 곁에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데 내가 누구를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일본인에게 가든, 가제오 메그르나 일본인들이 나에게 오든 둘중에 하나는 되어야 모든 일이 시작될거야.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할수가 없어.
나는 지금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 조차도 벅차.
내년에도 걸어다닐 수 있을지, 살아 있기나 할지도 모르겠어.
그런 내가 지금 일본에 간다는 것은 오만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아.
인간들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힘이 없거나 열등하다고 판단되면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그것을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인간들의 정신 수준이 영혼과 의식을 깊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야.
지금 지구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정도 수준이지만, 일본인은 그런 성향이 좀더 높다고 생각해.
힘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은 인간들에게 아주 보편적인 가치관이지만, 일본인들에게 그 말은 더욱 일반적인것 같아.
그러나 순수하기 때문에 인식을 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빠르게 수용하며 감화될 수 있어.
아무튼 지금은 그들에게 나는 힘없는 이상한 외국인일 뿐이야.
이런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려고 해도,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무시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해.
과거에 일본 자연음악회에 접촉을 시도했을 때에도 그들은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었어.
그나마 순수하고 선량한 자연음악회의 일본인들 조차도 그런데 하물며 다른 일반인들은 더욱 그렇겠지.
그래서 지금의 나로서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어.
이야기를 걸어보는 것 조차도 무리라고 생각해.
아무도,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겠지.
지금까지 한국에서 자연음악을 전하려고 노력한 나에게 그 누구도 관심가지거나 연락을 해온 일본인은 없었듯이 말야.
이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일본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 보일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
이 지구상의 어떤 나라의 인간들 보다 일본인들을 사랑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느끼고 있어.
그리고 자연이 일본인들에게 지진을 통해서 더이상 일본에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지만,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들은 그 메시지를 깨달을 수가 없을거야.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내가 가는것도, 그들이 나에게 오는 것도 무리야.
다만 가제오 메그르가 나에게 연락을 해온다면,
어떤것도 고민하지 않고 일본이든 전 세계 어디든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갈거야.
하지만 지난 20년간 그런 연락은 없었어.
언젠가는 연락이 올거라는 상상은 늘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언제가 될지 알수 없어.
어쨌든 이제 겨우 퍼즐을 맞췄을 뿐이야.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고,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겠지.
그러나 지금 내 나이와 건강...
그리고 지구의 변화와 일본인들의 숫자..
그중에서도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인간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가제오 메그르를 생각하면..
괴로움과 조바심이 들지만, 지금 나는 아무런 힘이 없구나.
아무튼 그가 나의 전생이라면 일본인들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 많겠구나.
그러나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했던 내 미래 처럼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겠지.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치있게 여겨지는 돈이나 권력도 없고, 그런 지식도 없어.
건강도 안좋고, 갈만한 직장도 없는 무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야.
인간들이 당연하게 이루려는 삶이나 가치있게 여기는 그 어떤 것도 이루고 싶지 않았어.
나는 내 미래는...
어딘가의 야산의 바위 틈이나 토굴에서 풀뿌리나 개사료, 음식 쓰래기를 먹으며 죽는날만 기다릴 거라고 생각해왔어.
인간들 사이에 사는 것이 괴롭고 힘들기만 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생각해.
인간들이 끝까지 나를 무시하고, 이 세상에 사는 것 조차도 견딜수 없어지면, 그렇게 하기로 했었어.
그리고 인간들이 진정으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살아왔어.
나에게 다가오는 모두는 그냥 놔둬도 스스로 알아서 배우고 깨달아갈 수 있었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해쳐가면서까지 그들의 업보와 안좋은 에너지, 악령들을 없에줬어.
하지만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말을 더이상 듣지 않고, 나를 떠나고는 다시 악행을 일삼는 삶을 살아갔지.
내가 살려준 그들이 새롭게 저지르는 악행에 되돌아오는 업보와 고통.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준 사랑을 그렇게 되돌려줬어.
그런 그들은 언젠가 내가 전해준 빛이 다하는날, 이전보다도 훨씬 깊은 어둠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되겠지.
결국 내 도움이 인간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며 방해가 될 뿐이였어.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어려움이 스스로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언젠가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까.
지금 세상의 인간들에게 나는 필요 없었어.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인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생각해왔어.
내가 없어지려 한다고 해서 누구 한명이라도 진심으로 마음아파 할까?
멀리서는 좋아보여도 가까이서 같이 살아보면 이상하게 행동하며, 부담스럽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나를?
의식체, 인간들 역시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들의 영혼이 경험한 것과 일치할 뿐이야.
자신의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판단할 수 없어.
고양이만 보고 살아온 영혼들에게 호랑이는 큰 고양이일 뿐이지.
현생에서 머리로 이해를 하려해도 오래가지 못해.
최소한 나와 비슷한 존재를 경험하기 까지 오랜 윤회를 거처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떤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어도 이해하고 배워야만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전에 지금까지 처럼 버려지겠지.
그래서 나는 거의 모든 인간들에게 미친 유기묘일 뿐이야.
난 인간들에게 네번이나 버려진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
그 고양이의 눈에 담긴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들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늘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사납고 탐욕스러운 사악한 인간들과 그 에너지 뿐이야.
하루도 정신을 차리고 살수가 없어.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나도 똑같은 행동을 하려고 하고 있어.
그런 나를 보며 더욱 깊이 좌절하고 절망할 뿐이야.
인간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슬프구나.
아무리 인간들을 사랑해서 왔다고 해도, 인간들의 실상에 살아야할 의지를 가지기가 어려웠지.
인간으로 윤회했던 이전의 많은 전생들이 그랬어.
그리고 직전의 그 전생도.
토시의 죽음으로 영혼의 성장?
그에 대해서 검색하다보니 그런 글이 있더구나.
어떻게 그렇게 볼 수 있지?
난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괴로운 감정이 기억나.
어떻게 봐야 성장한 영혼의 아픔이 영혼의 성장으로 보일 수 있을까?
나는 토시의 죽음 이후의 작품은 모르지만, 깊은 애절함과 그리움, 사랑을 적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
폐렴으로 병사했다고?
살리고 싶은 사람들을 두고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던 그 마음이 어땠을 거라고 생각하는걸까.
또한 폐렴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제로는 다른 원인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고 보니 현생에서의 나 역시 폐렴으로 죽을뻔한 적이 있었어.
폐렴의 원인은 아버지의 친구인 한의사가 지어준 잘못된 약 때문이였지.
알고보니 폐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약이였어.
환생을 하면 이전 생에서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을 다시한번 맞게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그런 경우 였었지.
이번에는 죽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후유증으로 한쪽 폐의 대부분이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죽을뻔 했었어.
토시의 죽음과 아버지로 인한 고통들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기억할 수 있어.
현생에서의 아버지가 나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에 비해서 아주 어릴때부터 아버지에 대해서 크게 분노했던 원인은 분명 이유가 있었던것 같아.
그때의 전생에서의 많은 일들이 흐릿하게 떠오르며 여러가지 감정들이 어렴풋이 느껴지는구나.
세상과 인간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상처받고 아파했던 감정들, 이별과 상실의 슬픔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마음들.
그때의 나는 그 마음들을 어떻게 글로 남겼을까.
그러나 자신의 삶도 이해받지 못하고, 글을 써도 사람들은 그 글에 담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지.
그 외로움과 고통,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속에서.
자살하는 심정으로 자기자신을 몰아세우며 살아갔다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변함이 없었어.
그렇게 기억해.
그런 삶에서 그 죽음은 병사일까 자실일까?
그의 소설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분명 그의 작품에서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애절하고 슬프고 친밀했을거야.
지금 내가 죽음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말야.
어쨌든 그가 나의 전생이라면, 나는 일본인들을 구하게 될것 같구나.
그것을 위해서 그때도 그렇게 살았고, 그 마음은 그때 썼던 글에서 다 남겨뒀을거야.
정말 그가 나의 전생이라면,
지금까지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야산의 토굴에서 굶어죽지는 않겠지.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만냐아할 사람을 만나고, 해야할 일을 하게 될테니까.
아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외롭게 홀로 죽게 되겠지.
어느 방향도 욕심내지는 않아.
다만 내 소원은 사랑하는 그들을 살리고 싶다는 거야.
그가 나의 전생이 아니라도 전생이고 싶을 정도로.
나는 일본인들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며 구하고 싶어.
미야자와 겐지.
그가 나의 전생인지 아닌지는 내 삶을 보면 알게 되겠지.
그리고 나역시 내가 죽는 순간 깨닫게 될거야.
내가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숫자만큼.
내가 살렸던 일본인들의 숫자만큼 말야.
전생도 과거도 미래도 알 필요없어.
사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신이라고 부르든 하느님이라고 부르든.
천국이라고 하든 지옥이라고 하든.
상관없어.
진실을 순간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과 함께하며 행복했던 이야기들을 말할거야.
나에게 진실을 말하라는 존재에게.
내가 진실이라고 말할거야.
나는 사랑이라고 말할거야.